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안지(安之), 호는 아행(雅行). 판서 최연(崔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전서(典書) 최경운(崔慶雲)이고, 아버지는 군수 최항(崔沆)이다.
1427년(세종 9) 녹사(錄事)로서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433년 우정언에 임명되었다. 1434년 이영(李郢)과 더불어 잠모(潛謀)하여 작은아버지 이흥(李興)의 노비를 가로챘다가 장류(杖流)되었고, 또한 문서를 위조하여 장류되었다.
1436년 평안도도절제사 이천(李蕆)의 군관이 되어 함경도지방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웠으나, 1440년 평안도도절제사의 군관으로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서용되어 1458년(세조 4) 부사직으로서 권농지책(勸農之策) 및 안산(安山)·광주(廣州)가 내[川]를 만들 수 있는 토지라고 상서(上書)하여 수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