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술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장릉참봉, 돈녕부도정, 부호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지헌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지헌(止軒)
  • 치선(穉善)
인물/전통 인물
  • 본관월성(月城)
  • 사망 연도1870년(고종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릉참봉|돈녕부도정|부호군
  • 출생 연도1786년(정조 10)
  • 출생지상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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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장릉참봉, 돈녕부도정, 부호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지헌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치선(穉善), 호는 지헌(止軒). 상주 출생. 아버지는 통덕랑 최식(崔湜)이며, 어머니는 진주정씨(晉州鄭氏)로 정종로(鄭宗魯)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동래부사 이휘령(李彙寧), 어사 박규수(朴珪壽)와 임응준(任應準) 등이 번갈아 천거하여 1860년(철종 11) 장릉참봉(莊陵參奉)에 임명되고, 그 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거쳐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에는 사교(邪敎)를 극렬히 배척하는 주장을 폈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유치명(柳致明)을 비롯하여 이병하(李秉夏)·이돈우(李敦禹)·이휘령·이원조(李源祚)·손양술(孫亮述) 등 영남의 석학들과 학문적인 교유가 있었다. 성리학에 있어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어받아 주리론(主理論)의 입장을 취하였으며, 음양역리학에 대하여도 남다른 조예가 있었다. 저서로는 『지헌집(止軒集)』 15권이 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지헌집(止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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