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王京)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귀산(貴山)과 깊이 사귀었는데, 중국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원광법사(圓光法師)를 가실사(加悉寺)로 찾아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받고, 이 계율을 지키기로 다짐하였다.
그 뒤 602년(진평왕 24) 8월 백제군이 아막성(阿莫城 :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 운봉)을 공격할 때 귀산과 함께 소감(少監)으로서 출전,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가 격전 중에 입은 상처로 인하여 길에서 죽었다.
이에 진평왕이 신하들과 함께 아나(阿那) 들판에서 맞이하여 그의 시체를 보고 통곡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 주었다. 또, 대사(大舍) 벼슬에 추증(追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