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송상현(宋象賢)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웠는데, 그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중 동래성(東萊城)과 운명을 같이한 당시의 동래부사이다.
1605년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처음으로 건립하였고, 1624년(인조 2) 사액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부산진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로 부산진성싸움에서 전사한 정발(鄭撥)이 배향되었으며, 1652년(효종 3) 동래부사 윤문거(尹文擧)가 이 사우를 내산(萊山) 아래 안락리(安樂里)에 옮겨 지을 때 강당 · 동재 · 서재를 같이 지어 안락서원(安樂書院)이라 이름하였다.
1709년(숙종 35) 동래부사 권이진(權以鎭)이 별사(別祠)를 건립하였고, 1735년(영조 11)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여러 사람을 모셔다가 합향(合享)하였으며, 또한 임진왜란 때 순사한 다대첨사(多大僉使) 윤흥신(尹興信)을 추배하였다.
한편, 동래산전투의 중심지역인 농주산(弄珠山)에 세웠던 충렬비도 함께 옮겨 세웠다. 그러나 별사를 없애게 되자 비(碑)를 남문(南門) 안으로 다시 옮겨 세웠으므로, 이 비는 현재 동래구 수안동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충신 37인, 효열(孝烈) 4인을 봉향하고 있음으로 해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도 무사하였다. 사우 외에 대소 8개의 묘각이 있고, 사우와 소재당 사이에 동문 · 서문 · 중문이 있는데, 이 3문은 1972년 6월부터 1975년 12월까지 담장을 설치하면서 건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