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에서 출생하여 일찍부터 도(道)에 뜻을 두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일부(一夫) 김항(金恒)의 정역사상(正易思想)에 심취하여 입신(入信)하였다.
그 뒤 오음성주(五音聲呪)의 주송(呪誦)으로 치병이 되고,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신비한 도법이 있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자 그들을 중심으로 일단의 종교집단을 형성하였다.
본격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6년부터로, 한말 의병활동을 하였던 아버지 석용(錫庸)의 업적을 기리는 충의비(忠義碑)를 건립하기 위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요강을 팔아오게 하였다 하여 세칭 ‘요강교’ 라고 불렸다.
이원영은 아버지의 충의비가 세워지자 보다 범위를 넓혀서 한말의 여러 충의열사(忠義烈士)의 비를 한자리에 세워보려는 계획을 하였다.
그리하여 1956년부터 전주시 금암동에 있던 자신의 집 앞산마루(현재 전북대학교 캠퍼스 안)에 자리를 정하여 중앙탑과 그 사방에 네 개의 비를 건립하기 시작하여 1958년에 완성하고, 매년 단옷날이면 이 곳에서 대제(大祭)를 지냈다.
1983년 이원영이 사망한 뒤에는 아들 이명근이 사당을 돌보고 있다. 신도가 한때는 수백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소수만이 제사에 참석한다. 신앙의 대상은 옥황상제이다. 옥황상제는 김일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선후천교역(先後天交易)의 시대가 되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오색(五色)으로 된 깃발을 여러 개 만들어 집 주위를 둘러 놓았다고 하는데 이는 무속신앙의 일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