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찬위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의 중앙군으로서 오위(五衛)의 충좌위(忠佐衛)에 소속되었던 특수 병종(兵種).
이칭
이칭
충좌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의 중앙군으로서 오위(五衛)의 충좌위(忠佐衛)에 소속되었던 특수 병종(兵種).
내용

1456년(세조 2)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의 자손들을 편입하게 한 특권적인 병종이었다.

그전에도 원종공신 자손들의 청원이 있었지만 이 때에 이르러서야 원종공신의 부(府)인 충익사(忠翊司)가 설정됨으로써 그 우대의 방법이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환관입후자(宦官立後者) 및 양반첩자(兩班妾子)의 종친가혼취자(宗親家婚娶者) 등도 충찬위에 소속되는 특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충찬위는 대우면에서 약간 뒤떨어질 뿐, 충의위(忠義衛)와 거의 같은 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설치 당시에는 내금위(內禁衛)나 별시위(別侍衛) 등의 예에 따라 언제나 수진(隨陣)에 참여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력에 의해 선발서용(選拔敍用)된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세조 때에 이미 수가(隨駕) 등을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것이 상례처럼 되었다.

다만 이들은 공신 내지는 양반 자제이기 때문에 비록 무능하지만 조상이나 계급의 혜택을 입어 군역을 지는 형식으로 충찬위에 속했다가 그들이 원하는 관직으로 나가는 특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경국대전』에 나타난 충찬위의 액수는 규정되어 있지 않고, 당번 때에 수록(受祿)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5교대에 의해 4개월씩 근무하고 체아(遞兒)는 종6품 이하의 20과(窠)가 배당되었다.

종5품에서 거관(去官)되며, 다시 복무하고자 하는 자는 21일씩 더 근무해 정3품에서 끝난다고 되어 있고, 보(保)는 없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군사제도(軍事制度)와 정치(政治)』(민현구, 한국연구원, 1983)
『근세조선사(近世朝鮮史) 연구(硏究)』(천관우, 일조각, 1979)
『조선시대(朝鮮時代) 군제연구(軍制硏究)』(차문섭,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근세조선전기(近世朝鮮前期) 군사제도(軍事制度)의 성립(成立)」(민현구, 『한국군제사-근세조선전기편-, 육군본부』, 한국군사연구실, 1968)
「선초(鮮初)의 충의(忠義)·충찬(忠贊)·충순위(忠順衛)에 대하여」(차문섭, 『사학연구』19, 1967)
「조선초기(朝鮮初期) 오위(五衛)의 병종(兵種)」(천관우, 『사학연구』18, 196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