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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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군영의 표하군, 취고수, 취수에 속한 취타악기 연주자 혹은 취타악대.
이칭
이칭
취고수(吹鼓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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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취타수는 조선 후기 군영의 표하군, 취고수, 취수에 속한 취타악기 연주자 혹은 취타악대이다. 주로 18세기에 취타악대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취타수는 표하군, 취수, 취고수 소속 군총의 하나였다. 취타수가 표하군에 속했던 것과 취타악기를 연주한 점은 취고수와 동일하나, 취타수가 취고수의 하위 집단이기도 했다는 점과 취타수라는 용어가 18세기 자료에 주로 보이는 점에서 취고수와 변별된다. 취타수가 연주한 악기는 대각, 나발, 발라, 호적, 북, 정, 솔발, 자바라, 나, 점자 등 취타악기였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 군영의 표하군, 취고수, 취수에 속한 취타악기 연주자 혹은 취타악대.
내용

취타수(吹打手)는 조선 후기 군영에서 취타악기를 연주한 연주자 혹은 악대를 말한다. 조선 후기 군영에서 취타악기를 연주한 악대를 취수(吹手), 취타수, 취고수(吹鼓手)로 불렀으며, 취타수라는 용어는 17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18세기에는 취타악대에 대해 취타수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취타수는 대부분 군영의 주1, 취고수, 취수 조직의 구성원 중의 하나였다. 표하군은 장관(將官)이나 영(營)에 배속되어 군사 기능을 돕는 각종 잡무에 종사하는 군총(軍摠)으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취타수가 속해 있었던 표하군은 장용외영 주2이며, 취타수는 호적수(胡笛手), 대각수(大角手), 나발수, 고수(鼓手), 정수(鉦手)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취수(吹手)는 그 명칭으로 미루어 관악기 연주자 혹은 집단임을 알 수 있고, 취수라는 명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취수도 취타수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군총으로 구성된 집단이며, 취수 소속 취타수는 고수, 정수, 자바라수, 나발수, 호적수, 솔발수, 대각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기요람(萬機要覽)』 등의 훈련도감 군총에 속한 취수는 취고수와는 별개의 군총이다.

취고수는 표하군 소속 군총의 하나이기도 하고, 취타수와 세악수(細樂手)를 포함한 악대를 의미하기도 하고, 취타악기를 연주하는 악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취고수 소속 취타수는 취고수 전체 구성원 중 비중이 비교적 높았다. 취고수는 상위집단이고, 취타수는 하위집단으로 되어 있어, 취고수와 취타수는 조직상 상하관계임을 알 수 있다. 취고수 소속 취타수는 고수, 정수, 대각수, 나발수, 호적수, 솔발수, 자바라수, 발라수, 나수(鑼手), 주3, 세점자수細(點子手)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취고수의 악기편성과 성격이 동일하다.

참고문헌

논문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의 형성과 전개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학위 논문, 2003)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대장이나 각 장관(將官)에 속한 군사.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훈련도감의 마병(馬兵), 금위영과 어영청의 기사(騎士)들 가운데 뽑혀 윗자리의 벼슬을 받던 병졸. 우리말샘

주3

군중(軍中)에서 타악기인 점자를 치던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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