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관공서 건물로서 1632년(인조 10) 3월에 중건하고, 1726년(영조 2)에 확장·중수하였다.
1824년(순조 24)에 칠사(七事) 즉 호구(戶口)의 정리, 농상(農桑)의 진흥, 군정(軍政)의 엄정, 학문의 흥기, 부세(賦稅)의 균정(均正), 송사(訟事)의 간명(簡明), 간활(奸猾)의 금식(禁息) 등 일곱 가지 정사(政事)를 보았다 하여 칠사당이라 이름하였다.
1866년(고종 3) 한때 진위대(鎭衛隊)의 청사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불이 난 것을 부사(府使)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중수하였다. 건물의 평면은 ㄱ자형으로 이루어졌는데, 정면 왼쪽에 연접하여 누(樓)마루를 세운 특징이 있다.
평면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있다. 누마루와 정면의 기둥은 원주를 사용했고, 좌우측면과 배면은 방주를 사용했다. 공포는 익공식인데 다른 건축물에서 보기 드문 3개의 익공을 사용했다. 쇠서는 끝에 꽃봉오리를 장식한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사례를 따르고 있다, 전면 기둥 사이 창방 상부에는 화반을 설치했는데 아래 부분이 물고기 모양이어서 매우 독특하다. 지붕은 누각과 정면만 겹처마로 했고, 다른 부분은 모두 홑처마다.
누마루는 본 건물보다 높게 만들었고, 3면에는 4분합(四分閤)의 세살창호를 달았다. 누마루와 본채의 연결 부분에는 다락방을 두었고, 연이어 북으로 1칸은 온돌방, 2칸은 마루방을 내었다.
중앙부의 3칸은 모두 대청마루를, 오른쪽 2칸은 온돌방을 두고, 방 앞에 툇마루를 놓아 대청마루와 연결시켰다. 6·25전쟁 후 강릉시장의 관사로 사용하다가, 1980년에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