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시 ()

태백시 전경
태백시 전경
인문지리
지명
강원특별자치도 동남부 내륙에 위치한 시.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303.44㎢
인구
3만 7936명[2024년 12월 31일 기준]
행정구역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시청 소재지
태백시 황지동
공식 홈페이지
https://www.taebae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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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태백시는 강원특별자치도 동남부 내륙에 위치한 시이다. 북쪽과 동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남쪽은 경상북도 봉화군, 서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정선군과 접한다. 전 지역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평야가 거의 없다. 정선군의 도계 탄전과 더불어 태백 탄전 지역의 중심지인 동시에 남한 최대의 탄전 지대였다. 백두대간의 중추이자 태백산맥의 모산인 태백산은 198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03.44㎢, 인구는 3만 7936명이다. 태백시청은 황지동에 있다.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동남부 내륙에 위치한 시.
개관

강원특별자치도 동남부 내륙에 위치한 태백시는 북쪽과 동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남쪽은 경상북도 봉화군, 서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 정선군과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9°06'~128°52', 북위 37°03'~37°20'이다. 전 지역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평야가 거의 없다. 정선군의 도계 탄전(道溪炭田)과 더불어 태백 탄전 지역의 중심지로,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 석탄 생산지였다. 백두대간의 중추이자 태백산맥의 모산인 태백산은 198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03.44㎢이고, 인구는 3만 7936명이다. 행정구역은 8개 행정동[황지동 · 황연동 · 삼수동 · 상장동 · 문곡소도동 · 장성동 · 구문소동 · 철암동], 17개 법정동[황지동 · 장성동 · 금천동 · 철암동 · 문곡동 · 동점동 · 소도동 · 혈동 · 화전동 · 적각동 · 창죽동 · 통동 · 백산동 · 원동 · 상사미동 · 하사미동 · 조탄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백시청은 황지동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에서 분기한 태백산(太白山: 1,567m)은 영동 산악 협곡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봉산(鷹峰山: 1303m)[천의봉(天儀峯)]을 분수령으로 한 한강, 낙동강(洛東江), 오십천(五十川)의 발원지이다. 시의 형태는 중심부에 해발 1,171.8m의 연화산(蓮花山)이 있고, 그 주위는 황지 · 장성 · 철암 · 통리 등 4개 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시 전체가 매봉산과 백병산(白屛山: 1,260.5m), 함백산(咸白山: 1,572.1m), 금대봉(金臺峯: 1,418m) 등의 멧부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해발 650m의 고원분지를 이룬다. 특히 매봉산과 태백산을 중심으로 1,300m 내외의 주1이 발달해 있다.

황지(黃池)주2, 『척주지(陟州誌)』,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옛 문헌에서 낙동강의 근원지로 밝혀진 곳이다. ‘하늘못’이라는 의미로 ‘천황(天潢)’ 또는 ‘황지’라고도 하였다. 낙동강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황지연못 외에 함백산 천의봉 북동쪽 계곡의 너덜샘, 너덜샘 아래쪽의 용소(龍沼), 태백산 장군봉(將軍峰) 아래의 용정(龍井)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태백시에서는 황지연못만을 발원지로 인정한다. 이 물이 태백시의 구문소(求門沼)를 통과하고 경상도 땅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

낙동강 최상류부에 해당하는 황지천(黃池川)의 구문소는 경상북도 봉화군과 태백시의 경계선에 위치한다. 구멍이 뚫려 깊은 소(沼)를 이루었다 하여 구멍소 또는 구문소라고도 불린다. 황지에서 발원한 물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 동점동에 이르러 큰 석회암 산지를 뚫고 지나가며 석문과 소를 만든 특수한 지형이다.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儉龍沼)대덕산(大德山: 1,310.3m)함백산 사이에 있는 금대봉 북사면에 있는 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우통수(于筒水)는 오대산 서대(西臺)에서 솟아나는 샘물인데, 곧 한강의 근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해 한강의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둘레는 약 20m, 냉천(冷泉)으로 사계절 내내 9℃ 내외의 수온을 유지하고 있으며 하루 2,000여 톤의 물이 석회암반을 뚫고 솟아 폭포를 이루며 쏟아진다.

오랜 세월 동안 흐른 물줄기 때문에 깊이 11.5m, 너비 12m의 암반이 구불구불하게 패여 있다. 소의 이름은 물이 솟아 나오는 굴속에 검룡이 살고 있다 해서 붙여졌다. 검룡소의 물은 다시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지표면으로 솟아오르는 복유천의 형태를 띤다. 물길은 정선군의 골지천(骨只川)과 조양강으로 흘러든 뒤 영월군동강을 지나고 단양군, 충주시, 여주시를 거쳐 남한강(南漢江)이 된다.

하천은 시의 중북부에 있는 매봉산을 중심으로 북류하는 남한강의 상류인 골지천과 남류하는 낙동강의 상류인 황지천, 철암천(鐵巖川)이 있다. 게다가 동쪽에 동류하는 오십천과 가곡천(柯谷川)이 있어 두부침식(頭部侵蝕)에 의한 주3 현상이 활발하다.

태백시는 옥천 습곡대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질은 주로 고생대 조선누층군의 석회암과 평안누층군(平安累層群)의 지층이 분포하며, 오랜 지질시대의 지각운동을 받아 지질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고생대 초기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까지 퇴적된 해성층(海成層)인 조선누층군 태백층군은 태백시 북부와 남부에 분포하며, 태백시 남부에서는 함백지향사 또는 백운산(白雲山: 1,426.6m) 향사대의 향사 습곡 구조에 의해 장성-철암동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해 생겨난 석회동굴들이 있는데, 그중 용연동굴은 화전동 금대봉 용수골에 있는 석회동굴로, 국내 석회암 지층으로는 제일 높은 지대에 위치한다. 총길이는 약 843m, 동굴 내부는 폭 50m, 길이 130m로 다양한 동굴 생물과 종유석 등의 동굴 퇴적물이 있어 태백용연굴(太白龍淵窟)이라는 이름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월둔동굴은 길이 700m의 수직 동굴로 입구가 안경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안경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로로 땅속 깊이 뻗은 원통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7개의 빈 웅덩이와 넓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는 내륙 산간지대의 특징인 고랭지 기후와 산지기후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기온은 비교적 낮으며, 겨울이 길고 봄 · 가을이 짧다. 태백시 지역의 기후대는 영동과 영서를 구분하는 태백산맥의 정점에서 영서 쪽으로 치우친 고지대 협곡의 고랭지대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운 산악형 기후를 보인다. 1991~2020년까지 평년값 기준으로 연평균기온은 9.0℃이며, 여름 최고기온은 25.3℃, 겨울 최저기온은 –8.1℃로 연교차가 심한 편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308㎜로 주로 여름철에 집중되며, 한국의 기후 구분상 중부 내륙형 기후구와 북부 동안형 기후구, 남부 대륙형 기후구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

역사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실직국(悉直國)에 속하였다. 102년(파사왕 23) 실직국이 신라에 항복하였고, 5세기경에는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394~491)의 남하정책으로 한때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다. 505년(지증왕 6)에 신라가 이곳을 다시 수복하여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군주(軍主)로 삼았다. 이후 신라가 북진정책을 수행함에 따라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시되었으며, 658년(무열왕 5)에는 북진(北鎭)이 설치되었다. 삼국통일 이후 685년(신문왕 5)에 9주 5소경이 정비되면서 하서주(河西州)에 속했고, 757년(경덕왕 16) 하서주가 명주(溟州)로 바뀜과 동시에 그 관할을 받는 삼척군(三陟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전기인 995년(성종 14) 지방제도가 정비될 때 척주(陟州)로 승격되고 단련사(團練使)가 파견되었다. 그 뒤 1018년(현종 9)에 다시 삼척현이 되면서 현령이 두어졌다. 이후 지방제도가 오도양계제(五道兩系制)로 정착하자 동계(東界)의 관할에 포함되었고, 1378년(우왕 4)에는 삼척군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3년(태조 2) 태조(太祖: 13351408)의 5대조인 목조(穆祖: 12041274)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부(三陟府)로 승격하였다. 그 뒤 1413년(태종 13)에 다시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都護府)로 개칭하는 규례에 따라 삼척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631년(인조 9) 삼척도호부를 9개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는데, 태백은 9개 행정구역의 하나인 장생리에 속하게 되었다. 1738년(영조 14) 관내 9개 리를 12개 면으로 개편하면서 장생은 상장생과 하장생으로 분리되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이 23부(府)로 편제될 때 삼척도호부는 삼척군으로 개명되고 강릉부 관할이 되었으며, 이듬해 도제(道制)의 실시에 따라 강원도 관할로 바뀌었다.

태백 지역은 지형이 험준했던 관계로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600여 명의 의병이 은거하면서 1912년경까지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는데, 그중 황지리전투가 대표적이다. 철암계곡을 일명 피내골이라고 하는데, 당시 의병들이 가족과 주민들을 피신시킨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14년에는 상장생면을 상장면으로 개칭하였고, 1920년 삼척군 상장면을 정식으로 설치하고 하장면과 분리하여 황지에 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

1933년에 일본 전력 재벌이 5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삼척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조선총독부가 보유하고 있던 탄전의 광업권을 인수하여 장성 지역의 석탄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로 인해 장성지구의 인구가 증가하고 지역이 발전하면서, 1935년 상장면의 면사무소가 장성으로 이전하였다. 1961년 1월 1일 상장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옛 이름을 따라 장성읍이 되었고, 1963년에는 장성읍 황지에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황지 지역의 광산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황지가 급속히 성장하였고, 1973년 장성읍 황지출장소가 황지읍으로 승격하여 태백은 장성읍과 황지읍으로 각각 분리되었다.

1977년 황지읍에 화전 · 소도 출장소를 설치했으며, 1981년 장성읍과 황지읍을 통합해 태백시로 승격시키고 삼척군에서 분리하였다. 1989년 시청사를 황지동으로 옮겼다. 1994년 삼척군 하장면의 원동리, 상사미리, 하사미리, 조탄리 4개 리를 태백시에 편입하고, 사조동을 설치하였다. 1996년 계산동 일부를 화광동에 편입하였다. 1998년 9월 10일 태백시 조례 제1020호로 행정동 통폐합 및 명칭 변경에 따라 16개 동이 8개 동으로 줄어들었다.

한때 태백시는 연간 640만 톤의 석탄을 생산해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며, 전국 제1의 광도로서 국가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1989년 시작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50여 개에 달하던 광산이 대부분 문을 닫고, 소수의 광산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지역 경제가 침체되었다. 1995년 12월 30일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탄광지역종합개발사업이 본격 추진되었고, 태백은 지역 특성을 살린 관광도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유물 · 유적

2025년 5월 기준 태백시에는 총 15개의 국가유산이 있는데, 이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유산은 8개, 시도지정문화유산은 7개이다.

국가지정문화유산 가운데 명승으로는 태백 검룡소(太白 儉龍沼)가 있다. 대덕산함백산 사이 금대봉 자락에 위치한 소로,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은 2개로,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태백 구문소 오르도비스기 지층과 제4기 하식지형(太白 求門沼 오르도비스紀 地層과 第四紀 河蝕地形), 삼엽충 · 완족류 · 두족류 · 복족류 등 고생대 화석이 잘 보존된 ‘태백 장성 오르도비스기 화석산지(太白 長省 오르도비스紀 化石産地)’가 있다.

‘태백 구문소’는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는 곳이다. 두 물길이 원래 지하에 있던 동굴과 만나 점차 동굴을 넓혔고, 지상에도 동굴 모양의 지형을 만들었다. 태백 구문소 오르도비스기 지층과 제4기 하식지형은 1억 5000만 년 전부터 5억 년 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태백 구문소의 독특한 지형을 통해 한반도 지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태백 장성 오르도비스기 화석산지는 고생대에 서식했던 생물들이 화석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삼엽충을 비롯하여 완족류, 두족류, 복족류 등이 대표적이다. 이 화석들은 과거 얕은 바다 환경에서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 과거 이 지역이 얕은 바다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백산 천제단(太白山 天祭壇)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어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태백산 정상의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장군단, 남쪽에는 하단이 일렬로 놓여 있으며, 이 세 단을 통틀어 천제단이라 한다. 제단을 세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태백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개천절에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또한 해마다 열리는 강원특별자치도민체육대회의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은 4개로, 구 태백등기소(舊 太白登記所)와 태백 장성이중교(太白 長省二重橋),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太白 鐵岩驛頭 選炭施設), 태백경찰서 망루(太白警察署 望樓)이다. 이 가운데 구 태백등기소는 태백시에서 가장 오래된 관공서 건물로, 지역 특유의 역사적 ·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지금의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처음에 삼척등기소 태백분소로 설립되었다가 분소가 등기소로 승격되면서 황지동으로 이전하였고, 삼척군 장성읍사무소로 사용되다 현재는 태백교육지원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1935년경 건설된 이중 구조의 석탄 운반 · 교통용 다리인 태백 장성이중교는 태백에서 가장 오래된 석탄산업 관련 시설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자원 수탈의 아픈 역사와 해방 이후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의 시대상을 잘 보여 준다. 위쪽은 석탄을 운반하는 기관차와 광차가 다니고, 아래쪽은 보행자와 차량이 다니도록 건설되었다. 다리를 받치는 기둥은 무지개 모양을 하여 돋보인다. 최근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여 지금은 삼중교가 되었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1935년경 지어진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 시설로, 우리나라 근대산업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땅속에서 캐낸 석탄을 선별하고, 사용 목적에 맞게 가공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 속해 태백 지역의 마지막 탄광으로서 최근까지 석탄을 생산하였으나, 2024년 7월 가동이 중단되면서 태백 탄광 역사의 막을 내렸다.

태백경찰서 망루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투에 대비하여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망루에서는 당시 태백시 중심지였던 장성동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군사 방어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어지러웠던 당시의 치안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역사 시설물이다.

시도지정문화유산 가운데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백장명사목불좌상(太白長明寺木佛坐像)은 장명사에서 소장하고 있다. 장명사는 탄광 근로자의 안전을 기원하고, 순직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목불좌상은 대웅전에 있으며, 보존 상태가 좋고 조각 기법이 뛰어나 미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백산석장승(太白山石長丞)은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길목 양쪽에 위치한 2기의 돌장승이다. 태백산 천제단과 관련하여 태백 산신의 수호 신상 구실을 했고, 지장의 경우 코가 많이 닳아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는 태백 본적사지 삼층석탑(太白 本寂寺址 三層石塔)과 태백 유일사 지장보살도 초본(太白 柳一寺 所藏 地藏菩薩圖 草本)이 있다. 이 가운데 태백 본적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후기~ 고려 전기에 제작된 삼층석탑의 탑재들로 태백산 일대 불교 유적들과 함께 불교문화가 퍼져 나가는 경로와 시기를 추정하는 데 귀중한 자료임이 인정되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태백 유일사 지장보살도 초본은 유일사에 소장된 조선시대 불화로, 지장보살도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다. 유려한 필선으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였으며, 묵서(墨書)를 통해 제작자와 제작 시기[1889년]가 명확히 확인되어 희소가치가 크다.

이 외에도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역 전승 무형유산인 ‘태백아라레이’가 지정되어 있고, 태백용연굴태백월둔동굴(太白月屯洞窟)은 강원특별자치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중 태백용연굴은 1980년, 태백월둔동굴은 1986년에 강원도 기념물[현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8월에 지정 해제되고, 2024년 8월에 강원특별자치도 자연유산으로 재지정되었다.

교육 · 문화

1930년대 초 광산 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전까지만 해도 태백 지역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 처음 생겨난 곳이 현 황지초등학교의 모태인 상장공립보통학교였다. 그 뒤 1938년 장성공립심상소학교[지금의 장성초등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41년 철암국민학교[지금의 철암초등학교], 1949년 동점국민학교[지금의 동점초등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 1948년 태백중학교, 1951년 태백공업고등학교[지금의 한국항공고등학교], 1962년 황지중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2025년 3월 1일 기준 태백시에는 초등학교 12개, 중학교 6개, 고등학교 5개, 특수학교 1개가 있다. 지역의 유일한 고등 교육기관으로 강원관광대학교가 있었으나 2024년 2월 폐교하였다.

태백시의 문화시설로는 공연 시설 1개[태백문화예술회관], 문화원 1개[태백문화원], 박물관 2개[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태백석탄박물관]가 있다. 1997년 개관한 태백석탄박물관은 태백시의 대표적인 문화 전시 공간으로 ‘석탄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 에너지자원으로서 석탄이 산업 발전에 기여한 역할을 석탄산업 변천사를 통해 살펴보고, 과거 산업역군으로서 석탄 생산에 종사한 광산근로자들의 업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이다.

태백시의 대표 축제로는 봄에 열리는 ‘태백 천상의 산나물 축제’와 여름에 열리는 ‘한강 · 낙동강 발원지 축제’, 겨울에 열리는 ‘태백산 눈축제’가 있다. 이 밖에 마을 축제로는 구문소동에서 열리는 ‘구문소용축제’, 황지동에서 열리는 ‘황지연못 황부자 며느리 축제’, 철암동에서 열리는 ‘철암단풍축제’, 장성동에서 열리는 ‘장성 탄탄마을 축제’, 삼수동에서 열리는 ‘삼수 바람개비 축제’, 황연동에서 열리는 ‘기차화통 축제’가 있다.

민속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갈풀썰이놀이, 사시랭이놀이, 외나무다리놓기, 멧돼지사냥놀이, 지게싸움 등을 들 수 있다. 태백시는 원래 깊은 산중으로 화전민이 흩어져 살던 곳으로 유일한 지력(地力) 증진의 수단은 퇴비였다. 이에 매년 음력 7월경이 되면 추수 전에 집집마다 돌아가며 퇴비를 장만하는 갈풀썰이놀이가 두레 형식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갈풀썰이놀이가 끝나면 씨름대회를 열어 씨름에 이긴 사람을 지게로 만든 가마에 태우고 이나 꽹과리 등으로 흥을 돋우며, 마을을 돌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치하하고 하루를 즐겼다.

사시랭이놀이는 동점동 전래의 민속놀이이다. 구성진 노랫가락과 함께 개다리소반에 엽전 24닢을 놓고, 한 명의 꼬지꾼[패를 돌리는 사람]과 네 명의 패장꾼이 둘러앉아 숫자가 새겨진 엽전을 나눠 받고 숫자 싸움을 벌이는 놀이이다. 동점동을 중심으로 삼척시의 도계읍과 가곡면 풍곡리, 하장면 상사미리, 태백시 소도동 어평마을,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등 반경 50리[약 20㎞] 안에서만 성행했고, 놀이꾼들이 모이면 수시로 사물놀이를 곁들이면서 밤을 새워 놀이를 즐겼다.

외나무다리 놓기는 굵은 통나무를 반으로 가른 뒤 좁은 계곡에 가로놓아 사람이 딛고 건너게 하는 놀이이다. 좁은 하천에서는 긴 널판 하나면 족히 건너다니지만 하천 폭이 넓어지면 널판을 여러 개 잇대어 놓아야 한다. 이때 널판과 널판이 이어지는 부분에 구멍을 뚫고 삼발 버팀목을 끼워서 다리발을 삼는다. 강을 사이에 두고 놓이기 때문에 양쪽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다리를 놓는데, 양쪽 강변에서 서로 다리를 놓아 오다가 강 가운데에서 만나 연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산에서 큰 통나무를 베어 내리는 작업과 나무를 큰 톱으로 켜는 작업, 다리를 조립하는 작업 등이 이루어진다.

태백시는 고원 산악지대에 자리하여 예로부터 화전민이 많이 살아서 겨울에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짐승 사냥을 많이 하였다. 여기에서 유래한 민속놀이로 멧돼지사냥놀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냥할 것을 의논하고 사냥 도구인 창, 줄먹, 설피 등을 준비하면서 몰이꾼과 창꾼들로 나누어 서로 사냥할 요령을 연습한다.

연습이 끝나면 몰이꾼은 설피를 신고 작대기를 짚고 꽹과리, 놋양푼 등을 치며 몰이에 나서고, 이때 몰이꾼에 쫓겨 오는 짐승을 창꾼들이 창으로 찔러 잡는다. 먼저 찌른 사람을 선창꾼이라 하여 으뜸으로 치고, 두 번째 찌른 사람은 재창꾼, 세 번째 찌른 사람을 삼창꾼으로 높인다. 이때 잡은 짐승을 제물 삼아 산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마을로 돌아와 가장 큰 기여를 한 순으로 고기를 분배한 다음, 전체 마을 사람들이 모여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한마당 놀이판이 벌어진다.

이 고장의 동제에는 태백산제(太白山祭)와 거리제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태백산제는 신라 파사왕(婆娑王: ?~112)태백산 정상에 단을 쌓고 청우(靑牛)를 제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 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중사(中祀)로서 국가에서 제를 올렸으며, 산정에는 천왕당(天王堂)이라 불린 태백산사(太白山祠)를 세워 경상도와 강원도의 인근 주민들이 봄 · 가을로 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민족의 수난기를 거친 뒤에는 제사의 대상이 하늘과 산신에서 단군(檀君)으로 바뀌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의미를 더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매년 개천절에 봉행되고 있다.

거리제는 정월 대보름 저녁, 세 갈래 길이나 네 갈래 길에서 지내는 무속적 제의이다. 지금은 동제의 성격은 사라지고 개인의 기복을 목적으로 행해진다. 그해에 먼 길을 떠나거나, 삼재(三災)가 끼거나, 큰일을 치르는 사람이 있는 집안에서는 그 집안 여자 가운데 제일 어른인 할머니나 어머니가 제주가 되어 거리제를 지낸다. 제를 지낼 때는 제지(祭紙)를 땅에 깔고 그 위에 짚으로 만든 인형을 눕혀 신의 대용으로 삼는다. 그런 다음 그 앞에 달걀, 밤, 대추, 곶감, 엽전 등을 올려놓고 한 해의 신수가 대통하게 해 달라고 가신(家神)에게 기원한다.

이 밖에 광산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는 순직산업전사위령제가 매년 10월 중순 황지동에 있는 순직산업전사위령탑 앞에서 거행된다.

설화 · 민요

설화

태백시에서는 「장자못전설」, 「구문소전설」, 「연화부수와 며느리의 재앙」 등의 지명과 관련한 전설이 다수 전해진다. 「장자못전설」은 옛날 굉장한 부자이지만 인색하기로 소문난 황씨 성을 가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루는 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황부자에게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다. 황부자는 시주는커녕 오히려 외양간에서 쇠똥을 퍼 시주 바랑에 넣어 버렸다. 노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한 후 돌아섰다. 그때 마침 아이를 업고 방아를 찧던 황부자의 며느리가 그 광경을 보고 몰래 자기가 찧던 쌀 한 바가지를 노승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노승은 집의 운이 다했으니 화를 피하려거든 자기의 뒤를 따르라 하였다. 이에 아기를 업은 며느리가 노승을 따라 구사리(九士里)[지금의 도계(道溪)] 산마루에 이르자 뇌성벽력이 치면서 황씨의 집에서 물이 솟아올라 순식간에 못으로 변하였다. 지금의 황지가 바로 그때 황부자의 집터였다고 한다.

황지천 부근에 있는 구문소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 안동에서 영호루를 건축할 때, 그 대들보를 화전동 금대산(金臺山)[금대봉]에서 마련해 황지천을 통해 운반하였다. 마침 대홍수로 인한 급류에 밀려 그 대들보가 석벽을 강타하자 뇌성벽력과 함께 산이 무너지고 구멍이 뚫리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소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문소에 관한 또 하나의 전설로 「구문소전설」이 있다. 옛날 엄종한이라는 사람이 구문소 옆에서 노부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구문소에서 고기를 잡아 노부모를 봉양하던 엄종한이 하루는 구문소에 빠졌다가 구문소 밑 용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용왕은 엄씨에게 용궁의 닭을 훔쳐 간 죄를 추궁했으나 엄종한은 잘못이 없음을 하소연하였다. 뒤늦게 자신이 잡은 물고기가 용궁의 닭임을 깨달은 엄종한은 용왕에게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한 일이었다며 3일 동안이나 잘못을 빌었다. 엄종한의 효성에 감동한 용왕은 주연을 베풀어 주고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용왕이 베푼 주연에서 산해진미를 본 엄종한은 두고 온 부모와 자식 생각에 떡 한 조각을 슬며시 주머니에 넣었다.

엄종한이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밖으로 나와 보니, 용궁에서 3일밖에 안 지낸 것 같았는데 지상에서는 3년이 흐른 뒤였다. 부모와 자식들과 상봉한 뒤, 그는 용궁에서 가져온 떡이 생각나 주머니에서 꺼내 보았으나 이미 딱딱한 차돌처럼 굳어 있었다. 엄종한은 그 떡을 무심코 쌀독에 넣어 두었는데, 다음 날 쌀독을 열어 보니 쌀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쌀은 퍼내어도 줄지 않는 화수분이 되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딸이 친정어머니에게 용궁에서 가져온 백병석(白餠石)을 빌려 달라고 하였다. 마지못해 빌려주었으나 딸은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결국 친정의 성화에 못 이겨 안동으로 이사를 가 버렸고, 그때부터 엄씨 집안은 몰락하고 안동으로 이사 간 딸의 집안인 조씨네는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연화산은 봉우리가 둥그런 연꽃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연화부수와 며느리의 재앙」은 이 연못과 관련이 있다. 과거에 그곳에는 근처에 엄청난 부자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집이 원체 부자니까 손님이 매일 끊이지 않자 여자들은 음식 대접하랴, 설거지하랴, 그 치다꺼리를 모두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에 새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손님 접대에 몸서리가 났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와서 시주를 청하였다. 시주를 하면서 며느리가 한숨을 쉬니 그 스님이, “시주님은 이렇게 풍족한 집에 살면서 왜 한숨을 쉽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다른 건 다 좋은데 손님이 좀 안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면서 손님이 안 올 비방을 알려 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하도 사정을 하니 스님이 “정 그게 소원이라면 비방을 알려 주겠소. 연화부수에 가서 물꼬를 트시오. 물꼬를 터 물이 빠져나가면 손님도 그렇게 빠져나갈 것이오.”라고 알려 주었다. 그날 밤 며느리가 스님이 알려 준 대로 호미를 가지고 가서 물꼬를 터 버리자 물이 빠지면서 연못의 학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연화부수 물이 다 빠져 말라 버리자 그 집에 오던 손님이 뚝 끊겼고, 집안도 망했다고 한다. 그 연못은 지금은 개구리나 몇 마리 살 정도의 작은 연못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이 밖에도 신선을 감동시켜 인삼을 얻은 「박효자의 효성」, 백일기도를 올려 팔 형제를 낳았다는 「팔형제터전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전설」 등이 전한다.

민요

태백 지역의 특징적인 민요로는 「갈풀썰이소리」가 전해진다. 이는 퇴비를 장만하기 위해 작두로 갈풀을 썰 때 부르는 노동요로, 작업에는 풀모시 · 풀아시 · 작두꾼 · 뒤풀꾼 · 풀가리꾼 등 직능별 역할이 나뉘어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한다. 「갈풀썰이소리」는 선후창 형식으로 불리며, 가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풍덩새가 우는구나 / 자작자작 걸어온다 / 자작나무 우리리라 / 쿡찔렀다 피나무 / 일시도 마음 놓지마라 / 낮에봐도 밤나무 / 십리안에 오리나무 / 칼로찔러 피나무 / 무질로같은 미류나무 / 사시장철 사시나무 / 방귀꿨다 뽕나무 / 냄새난다 개똥나무 / 칭칭울어 칭칭나무 / 팍팍솟는 팥꽃나무 / 멀어졌다 머루나무 / 아하좋다 갈풀이야….”

이처럼 「갈풀썰이소리」는 갈풀로 쓰이는 여러 나무의 이름을 쭉 나열하며 노래하고 있다. 또한 통동의 주민들이 가을이 되면 백병산에 도토리를 따러 가면서 불렀다는 노래가 있다. 가사는 “백병산 꿀밤나무 밤이나 많이 열어라 / 이웃집 아가씨하고 밤이나 주으러 가려나 / 아리아리 쓰리쓰리 어허야 좋다.”이며, 「아리랑」의 후렴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태백 지역과 삼척 지방에는 「메놀이」 또는 「묘놀이」라는 민요가 있다. 이는 강릉의 「오독떼기」와 비슷하다.

가사는 “폭이넓고 장찬논은 어느농부가 갈아주며 / 대호정의 정화수는 어느님이 맛을보나 / 담배참도 참일러냐 점심참도 참일러냐 / 돌려라 돌려라 칠제비 돌려라 우여아 / 우야우야 우야우였사 우후후 우후후 / …방울방울 땀방울이 추수끝에 옥백일세 / 쇠꽃같은 이팔목에 힘을다해 얼른매세 / 돌려라 돌려라 칠제비 돌려라 우여아 / 우야우야 우야우였사 우후후 우후후 / ….” 등이다.

또한 숫자가 새겨진 엽전 24닢을 다섯 명이 돌리며 노는 사시랭이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즉 숫자가 나오면 “일날나리 옥통소 / 이리갈까 저리가 / 삼월이둘이면 윤삼월 / 말많은 사살쟁이 / 오관천관 관음장 / 육로로갈까 배로가 / 칠응칠응 응칠응 / 파랑나구 강나구 / 구월국화 굳었네 / 구질구질 오는비 / 청룡황룡의 눈물비 / 장대끝에 돈달고 / 장터궁터에 말매고 / 큰술집으로 돌아선다.”를 부른다.

산업 · 교통

태백시는 전 지역이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평야가 거의 없다. 따라서 농업적 기반은 매우 미약하다. 2021년 기준 경지면적 12.48㎢ 중 밭이 12.38㎢, 논이 0.10㎢로 밭이 대부분이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감자, 콩 및 고랭지채소 등이다. 특히 매봉산, 태백산 등지의 해발 1,000m 내외 고위평탄면을 중심으로 무와 배추 등의 고랭지채소를 대규모로 재배해 소득을 올린다. 또한 주변 산지 사면에는 초지가 많아 목축에 알맞으며, 한육우, 돼지, 닭, 사슴 등의 사육이 성하고 양봉도 활발하다.

임야 면적은 268.21㎢이며, 산림률은 88%에 달한다. 이 중 국유림은 180.82㎢, 민유림은 86.82㎢이다. 임목지는 252.03㎢로, 침엽수가 100.18㎢, 활엽수가 91.55㎢, 혼효림이 59.30㎢로 침엽수 비중이 비교적 높으며 임목 축적량도 많은 편이다. 무임 목지는 15.61㎢로, 광산 주변의 벌목 및 폐석(廢石)으로 인한 삼림 파괴가 심각하다. 주요 임산물로는 약용식물과 산나물의 생산이 많다.

이 지역은 정선의 도계 탄전과 더불어 태백 탄전 지역의 중심지인 동시에 남한 최대의 탄전 지대였다. 일대에 넓게 분포하는 고생대 평안누층군에는 질이 좋은 무연탄이 매장되어 있어 일찍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1933년 일본인에 의해 장성 지역에서 탄맥(炭脈)과 매장량이 확인된 뒤, 1936년 삼척개발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개발에 착수하였다. 한국전쟁대한석탄공사가 발족되면서 국영화되었으며, 그 뒤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국내 최대의 탄광이자 이 지역 유일한 국영 탄전이 되었다. 그러나 1989년부터 추진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영세 탄광이 폐광되고, 폐광 지역 개발 촉진법에 의한 각종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제조업의 발달은 거의 미미한 상태이며, 탄광 산업이 활발하였을 때에는 채광에 관련된 광산용 기계 수리 공장 등이 있었으나, 탄광이 폐광되면서 관련 업체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산업 및 농공단지로는 철암농공단지와 장성농공단지, 동점산업단지가 있다. 철암농공단지는 1992년 조성되었으며, 29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들의 주요 업종은 식료품, 목재 및 나무 제품, 펄프 및 종이 제품이다.

장성농공단지는 2006년 조성되었으며, 29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주로 조립금속, 음식료, 전기 관련 기계를 생산하고 있다. 동점산업단지는 2021년에 조성을 완료하였으며, 입주 기업을 모집 중이다. 2024년 기준 업종으로 가장 많은 회사를 보유한 분야는 수소 연료 발전 에너지 기업들이다.

상업 활동과 관련해 태백시에서 가장 큰 상권은 황지로 일대이다. 광장로에서 황지로를 지나 번영로에 이르는 길이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이다. 전통시장으로는 황지자유시장, 장성중앙시장, 통리10일장이 있다. 황지자유시장은 1971년 처음 세워졌으며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재래시장으로,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태백시 특산물인 당귀, 천궁 등의 약용식물과 버섯류 등이 판매된다.

1977년 개설된 장성중앙시장은 석탄산업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시장으로 인근 광업소와 장성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번성하였던 시장이다. 태백 지역의 향토 음식인 물닭갈비와 함께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통리10일장은 황지자유지상과 장성중앙시장이 상설 시장의 기능을 유지하는 반면 과거 강원도의 10일장 문화를 아직까지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과거부터 교통이 불편하고 거주인구가 타 지역에 비해 더욱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설 시장보다는 정기시장 형태로 많이 열렸으며, 특히 10일마다 열리는 장이 많았다. 통리10일장은 여전히 10일마다 열리는 장으로 5일, 15일, 25일 장이 열린다.

교통은 무연탄 수송을 위해 1940년에 철암선(鐵巖線)[철암-묵호항], 1955년에 영암선(榮巖線)[영주-철암], 1962년에 황지지선(黃池支線)[백산-황지], 1963년에 황지본선[통리-심포리], 1966년 고한선(古汗線)의 증산-고한을 개통하였다. 1973년에는 고한-황지 구간을 완공하고 정선선 일부와 고한선, 그리고 황지지선을 통합해 태백선으로 명명하였다. 1975년에 백산삼각선(栢山三角線)[황지-백산] 등이 개통하였다. 1970년대 이후 무연탄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대량 수송을 위해 전철화가 이루어졌다. 현재 태백선이 지나는 태백시 구간의 역은 추전역, 태백역, 문곡역, 백산역만이 남아 있으며, 여객 정차가 가능한 곳은 태백역이다.

영동선은 철암선과 영암선, 동해북부선을 통합하여 지금에 이른다. 전철화를 시작하여 1975년 12월 철암-동해, 1997년 3월 영주-철암, 2005년 9월 동해-강릉 구간이 끝났다. 2012년에는 동백산-도계 구간을 통째로 대체하는 솔안터널 구간을 완공하였다. 현재 영동선 태백시 구간의 역은 동점역, 철암역, 백산역, 동백산역, 솔안역이 있으며, 여객 정차가 가능한 곳은 철암역과 동백산역이다.

도로교통은 편리한 편이 아니다. 고속도로가 개설되지 않은 지역이라 고속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제천시 혹은 삼척시까지 가야 한다. 국도는 봉화-태백-영월의 국도 31호선, 봉화-태백-삼척의 국도 35호선, 정선-태백-삼척의 국도 38호선이 있다. 그리고 홍천-삼척을 연결하는 지방도 424호선이 있어 내륙 교통의 중심지를 이룬다. 시내에는 태백산국립공원을 비롯해 각종 동굴과 사찰 등 관광자원이 많다.

관광

태백시는 고원 · 산지와 그 인근의 사찰 및 문화유산이 주요 관광자원으로, 특히 자연 관광자원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을 중심으로 태백8경을 선정해 놓았는데, 태백산 천제단과 태백산 주목 사계, 태백산 눈꽃과 설경, 태백산 일출과 낙조, 황지연못의 사계, 검룡소의 신비, 구문소와 구문팔경, 용연동굴 등이 속한다. 특히 태백산과 연화산 등의 산악 경관과 심원사(深源寺) · 흥복사(興馥寺) · 청원사(淸源寺) · 장명사(長明寺) 등의 사찰, 용연동굴 · 월둔동굴 등의 석회동굴, 그 밖에 만경대, 구문소, 자개문, 단골계곡, 황지, 태백산국립공원 등의 관광지가 잘 알려져 있다.

연화산유원지는 야영장과 어린이 놀이터 및 각종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심신 단련과 정서 함양에 적합하며, 가족 단위 이용이 용이하다. 당골계곡에는 당골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야영장과 주차장, 연못과 시민헌장비 등이 있다. 황지는 태백 시내 한가운데에 있으며, 3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택리지(擇里志)』『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 1,300리[약 525㎞]의 발원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가뭄이나 장마에 관계 없이 하루에 약 5,000톤의 맑은 물이 솟아오른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중추이자 태백산맥의 모산인 태백산은 198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2016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태백산 천제단이 있는 영봉[1,560m]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봉, 동쪽에 문수봉[1,517m], 영봉과 문수봉 사이의 부쇠봉[1,546m]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사계절 다양한 절경을 볼 수 있다. 태백산국립공원 내에는 단군성전(檀君聖殿), 단종비각, 용왕각, 망부석 등의 유적과 만경사, 백단사, 만덕사(萬德寺) 등의 사찰이 있다.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 416만 5300㎡[126만 평]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특산식물 15종류와 16종류의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매, 새매, 검독수리 등의 조류가 발견되었다. 고한 쪽의 두문동 계곡에서는 도마뱀, 한소리 계곡에서는 도롱뇽, 창죽계곡에서 꼬리치레도롱뇽의 집단 서식지가 발견되었다. 또한 곤충류 중 한국 미기록종 13종이 발견되었다.

태백시는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조성된 강원랜드의 배후도시로, 현재는 고원 관광 · 휴양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단행본

『제42회 태백시통계연보』(태백시, 2023)
『한국지리지: 강원편』(국토지리정보원, 진한엠앤비, 2015)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국토지리정보원, 진한엠앤비, 2015)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기복이 거의 없이 평탄하게 발달한 지표면. 우리말샘

주2

조선 성종의 명(命)에 따라 노사신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서. 『대명일통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각 도(道)의 지리·풍속과 그 밖의 사항을 기록하였다. 특히 누정(樓亭), 불우(佛宇), 고적(古跡), 제영(題詠) 따위의 조(條)에는 역대 명가(名家)의 시와 기문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55권 25책의 활자본. 우리말샘

주3

두 하천이 가까이 있으면서 한 하천이 다른 하천의 흐름을 빼앗는 현상. 강바닥의 높이가 서로 다른 경우에 두 하천의 침식력의 차이로 일어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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