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의감 ()

목차
의약학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때 왕실의 의약과 질병의 치료를 관장하였던 관서.
이칭
이칭
사의서(司醫署), 전의시
제도/관청
설치 시기
고려 전기
폐지 시기
13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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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시대 때 왕실의 의약과 질병의 치료를 관장하였던 관서.
내용

목종 때 관원으로 태의감(太醫監) · 소감(少監) · 승(丞) · 박사 · 의정(醫正)이 있었다.

문종 때 판사(判事) 1인(종3품), 감 1인(정4품), 소감 2인(종5품), 박사 2인(종8품), 승 2인(종8품), 의정 2인(종9품), 조교 1인(종9품), 주금박사(呪噤博士) 1인(종9품)을 두고, 이밖에 서리직으로 의침사(醫針史) 1인, 주약(注藥) 2인, 약동(藥童) 2인, 주금공(呪噤工) 2인이 있었다.

1308년(충렬왕 34)사의서(司醫署)라 고치고 동시에 관원으로 제점(提點) 2인(겸관으로 정3품), 영(令) 1인(정3품), 정(正) 1인(종3품), 승 1인(종5품), 낭(郎) 1인(종6품), 직장(直長) 1인(종7품), 박사 2인(종8품), 검약(檢藥) 2인(정9품), 조교 2인(종9품)을 두었다. 그 뒤 다시 전의시(典醫寺)라 고치고 제점을 없애고 영을 판사, 낭을 주부(注簿)라고 하였다.

1356년(공민왕 5) 7월 다시 이름을 태의감이라 고치고 정(正)을 개정하여 감 · 부정(副正)을 소감이라 하고 검약을 없앴으나, 1362년 3월 다시 전의시라 개칭하고 감을 정, 소감을 부정이라 하고 다시 검약을 두었다. 1369년 또다시 태의감이라 칭하고, 또 정 · 부정을 감 · 소감이라 하고, 1372년 다시 전의시라 칭하고 정 · 부정으로 고쳤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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