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문은 1959년 1월 1일 일본 도쿄[東京]의 니시칸다[西神田]에 있는 센슈대학[專修大學] 근처의 출판사 2층의 방 2개를 빌려 이영근(李榮根)과 원심창(元心昌) 등이 중심이 되어 창간하였다. 당시 편집장은 강현철(康鉉哲)이 담당하였다.
창간 당시에는 제호가 『조선신문(朝鮮新聞)』으로 순간(旬刊)이었으며, 1959년 11월 20일자(제20호)부터 『통일조선신문(統一朝鮮新聞)』으로 개제되면서 주간으로 바뀌었다. 1973년 9월 15일 다시 현재의 『통일일보』로 개제되면서 일간으로 발행되었다. 1998년 지령 6436호부터는 주간으로 발행되었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사시(社是)로 삼고 있는 이 신문은 창간호에서 밝히고 있듯이, 민족의 위신을 높이고, 조국의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을 재일동포에게 제공해 주고, 그 권익을 옹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일간지로 발행되던 당시, 이 신문은 본사를 도쿄[東京]에 두고 있으며, 서울과 오사카[大阪]의 2개에 지사를, 나고야[名古屋] · 교토[京都] · 시모노세키[下關] 등의 9개소에 지국을, 44개소에 분국을 두고 있어, 이들을 통하여 취재 · 보급과 광고사업망을 구축하여 종합일간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95년 8월 당시 발행부수는 21만부이며, 독자층의 약 14%가 일본인으로서 이 가운데 75%가 일본의 경영자 · 관리직 및 정부관료 등 지식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간으로 바뀐 이후인 2008년 3월 현재, 발행면수는 6면이다.
일간신문으로 발행되던 당시, 매일 대판(大版) 4면(토요일은 6면, 특집은 8면), 1단(段) 15자, 15단제의 일문(日文)으로 발행되었다. 지면 구성은 1면에 정치 · 외교 · 안보 문제, 2면에 논설과 국내외 경제단신, ‘남북의 논설’ 소개, 3면은 재일동포문제와 독자투고란, 4면은 문화면이며, 토요판 5면은 토픽스, 6면은 가정란으로 구성되었다.
이 신문의 보도면의 특색은 북한관계기사가 비교적 신속하고 풍부하게 보도된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국내지가 때때로 이 신문의 기사를 인용, 보도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이것은 동경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뉴스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조총련 등의 북한관계 단체가 있어서 북한의 소식에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통일정책노선비판의 기획기사를 비롯하여, 문세광(文世光)사건 · 조선노동사약사 · 동토(凍土)의 공화국 등의 특색 있는 기사를 많이 게재하였다.
이 신문은 일본 내의 유일한 교포신문으로서 대내적으로 재일동포들을 단합하게 하고, 대외적으로 일본에게 우리의 실정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민족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