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된 친북성향의 재일동포 단체.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조련은 1949년 9월 관련 산하 조직인 민청 등 4개 단체와 함께 폭력 단체로 규정되어 해산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조직의 중요 간부들인 김천행·윤근·한덕수 등은 공직 추방을 당했다.
1950년 4월 조련이 해산된 다음에 조련의 계속 조직으로는 조선인단체협의회, 조국통일전선실행위원회 등이 존재했다. 이들 단체는 1951년 1월 9일재일조선민주전선(在日朝鮮民主戰線, 약칭 민전)을 결성했다. 조련의 행동조직이었던 민청의 후속 조직으로 조국방위위원회(祖國防衛委員會, 약칭 조방위)가 결성되었다.
조총련 결성의 직접 계기는 북한의 한덕수 지지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재일동포를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 한다”는 북한 남일(南日) 외무장관의 성명과 이것의 연장선상의 한덕수(韓德銖)를 지지하는 성명이 나왔다. 그리고 민전 내부의 주류파와 민족파 사이의 투쟁이 종결된 것이다.
특히 민전 제19회 중앙위원회에서는 한덕수가 ‘재일조선인운동의 전환에 대해서’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여 “공화국 공민의 입장”에 선 “재일조선인운동의 방향과 투쟁 방법”을 분명히 했다. 5월에는 그러한 노선전환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고, 24일 임시대회에서 민전의 발전적 해소 결의가 있게 된다. 이후인 1955년 5월 25일 민전과 조방위가 해산되고 한덕수가 중심이 되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일본공산당은 민대파의 해산과 ‘조선인’ 당원의 당적 이탈을 결정했다. 결국 재일동포운동은 4반세기 동안 그 기치 아래에서 투쟁해 온 일본공산당과 결별했고,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서 김일성과 조선노동당의 지도 아래 출발하게 되었다.
기능과 역할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3,340명이 북한으로 갔다. 당시 재일동포의 귀환문제가 크게 부상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1958년으로 조총련 가와사키〔川崎〕지부 중유(中留)분회에 거주하는 재일동포가 집회를 열고 일본에서의 괴로운 생활을 청산해서 집단귀국 한다는 것을 결의하면서였다.
조총련에게 1960년대 초는 조직의 확립기였다. 거의 모든 일본의 도도부현(都道府縣)에 지방본부, 조청(朝淸) 등의 참가 단체, 조선신보사 등의 사업체가 조직에 들어갔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조선대학에 이르는 150개에 이르는 민족학교의 틀이 마련되었다. 그 결과 1960년대 초의 조총련 산하의 재일동포는 20만 명이 되었다.
1970년 전후 재일동포 사회는 급변한다. 조직적으로는 성장하여 재일동포 중 거의 절반 정도를 산하에 두었다. 그리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는 조직체제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김병식(金炳植)이 급부상하기도 했다. 그는 1972년 한덕수와 대립하여 실각했다. 이른바 ‘김병식사건’의 충격은 일부 간부나 일반 동포의 조직 이탈을 초래했다. 그리고 조총련의 조직이 하향곡선을 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재일동포 성묘단의 한국, 즉 모국을 방문 사업이 추진되어 조총련의 구성원이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전향하는 수가 증가했다.
1980년대에는 한덕수체제는 재건되었다. 이후에는 김정일의 지도가 조총련 조직 내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정일의 지도는 조총련을 급변하게 했다. 그 결과는 재정 담당 부의장이었던 허종만(許宗萬)이 1993년에는 책임부의장으로 승격되었다. 이것은 조총련 조직의 일인자가 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198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과 조총련계 상공인들에 대한 헌금 강요, ‘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의 개최로 인해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갔다.
실제로 조총련은 1990년대 이후 약화되어 갔다. 북한의 식량 위기와 탈북자 문제, 그리고 조긴(朝銀) 파산과 납치 문제 등이 이를 선도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조총련은 1995년 강령이 대폭 개정되었다. 제1조 “애국애족의 기치 하에 주체의 위업 계승, 완성을 위해서 공헌할 것”이 공식적으로 명기되었다. 그리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 2004년에 개정되었다.
조직을 장악했던 한덕수는 2001년 사망한다. 이후 조총련은 서만술(徐萬術)의장, 허종만 책임부의장 체제가 되었다. 2000년대 후반 조총련은 조직이 약화되어 약 4만 명으로 줄었다.
한편 조총련은 『조선신보』를 발행하고 있다. 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면 매일 발행되고 있는데, 조선신보사가 발행하고 있다.
현황
조총련의 산하 단체로는 재일본조선인상공인동맹, 재일본조선인노동자동맹, 재일본조선인민주여성동맹 등을 비롯해 재일본조선인인권위원회, 재일본조선인평화통일위원회 등의 위원회가 존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현재 조총련은 구성원이 특별영주권자의 10%정도인 4만 명이 되었다. 북한의 해외 교포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재일동포 사회의 새로운 단체로 거듭나는 것이 조총련이 안고 있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역, 선인, 2012)
- 『朝鮮總連』(朴斗鎭, 中央公論新社, 2008)
-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조선신보사, 2005)
- 「재일동포가 걸어온 두 갈래 길, 민단과 조총련」(김인덕,『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경인문화사, 2006)
- 「조총련연구:역사와 성격을 중심으로」(진희관,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 『"i"ェ朝鮮總連"フ罪"ニ罰』(韓光熙, 文藝春秋, 2005)
- 『記録 在日朝鮮人運動朝鮮総 連50年』(呉 圭祥, 有限会 社RA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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