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본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오사카부(大阪府) 스이타시(吹田市)에서 한국전쟁에 협력하는 것을 반대해서 일으킨 사건.
개설
역사적 배경
경과
밤 12시가 지나자 집회 참가자 일부는 게이한신(京阪神) 급행전철 이시바시역(石橋驛)에 막차를 대신할 임시 전철의 편성을 요구했다. 그런가 하면 별동대인 이른바 야마고에부대(山越え部隊)가 동쪽으로 향해 우익 사사가와 료이치(笹川良一) 집을 화염병으로 습격했다. 그리고 야마다무라(山田村)에서 전철부대와 합류해 국철 스이타 조차장으로 향했다. 약 900명의 시위대는 스사노오신사(須佐之男神社) 앞에서 스이타시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고, 스이타 조차장 구내를 25분간 시위 행진했던 것이다. 마침내 스이타역에서 경관이 권총을 발사하자 시위대는 화염병으로 응전했고, 5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리고 소요죄와 업무방해죄 등의 용의로 경찰은 300여명을 체포, 111명을 기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40%가 조선인이었다.
당시 변호인단은 “헌법 옹호를 위해 행진하던 시위대를 경찰이 부당하게 습격한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1953년 7월29일 제29차 공판이 있었는데, 당시 재일조선인 강순옥은 재판정에서 “7월 27일 합의된 휴전을 축하하며 전쟁 때 스러진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자”고 제안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피고인들은 일제히 묵념을 했다. 이른바 ‘스이타 묵념’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 사전』(정희선·김인덕·신유원 역, 선인출판사, 2012)
- 『大阪で鬪った朝鮮戰爭』(西村秀樹, 岩波書店, 2004)
- 「わが生と詩」(金時鐘,『吹田事件・わが青春のとき』, 岩波書店, 200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