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근우회 도쿄지회는 1928년 결성된 근우회 일본지회의 하나이다. 1927년 신간회 본부가 결성되자 여성운동계 내부에서 여성운동의 통합운동이 일어나 근우회가 조직되면서, 일본 도쿄에서도 근우회 지회가 조직되었다. 위원장 박화성을 비롯해 이완구, 박봉순 등이 역원으로 선출되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와 사무실을 함께 쓰며 다수의 활동을 같이 하였다. 근우회 정기 전국대회를 둘러싸고 본부와의 갈등이 있었다. 집행부 조직을 통해 적극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는데, 1928년 3월부터 전개된 여성문제 대강연회와 같은 선전, 선동활동도 있었다. 신간회 도쿄지회의 해산과 함께 해산하였다.
정의
1928년 결성된 근우회 (산하) 일본지회의 하나.
개설
연원 및 변천
선출된 주요 역원은 위원장 박화성, 서무부 이완구, 선전조직부 양봉순, 정치문화부 강평국, 재무부 김분옥, 출판부 윤성상, 조사정보부 지경숙 등이었다. 이 근우회 도쿄지회는 신간회 도쿄지회가 쓰는 사무실인 도쓰카쵸(戶塚町) 199번지에 함께 쓰고 있었다. 따라서 절대 다수의 활동을 신간회 도쿄지회와 함께 했다.
기능과 역할
결국 일제의 집회 금지에 대해 근우회 본부는 의안 토의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임시 전국대회를 7월 14일 개최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자 근우회 도쿄지회는 신간회 도쿄지회와 연명으로 「근우회 임시 전국대회에 제(際)하야 우리는 이러케 성명한다-특히 대회 대의원 제군에게 격(檄)함-」는 문건에서 지난 5월 제2회 전국대회가 금지되었는데, 이것은 근우회에 국한된 탄압이 아니기 때문에 탄압 국면에 대항해 정치적 해금의 일시적 국면에서 대회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지회의 성명서에 대해 근우회 본부는 7월 12일 집행위원회를 열어 내부에서 논의를 하고 본부를 무시한 행동이라고 하여 도쿄 지회를 무기정권 처분시켰다. 이러한 상태에서 근우회 도쿄 지회는 7월 14, 15일 임시 전국대회가 열리자 정권 상태로 출석했다.
도쿄(東京)에 조직적 기반을 둔 도쿄 지회는 집행부 조직을 통해 조직 사업을 전개했다. 제3회 집행위원회는 1929년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선전데이를 정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도쿄지회의 활동 가운데 선전, 선동활동으로는 1928년 3월 18일부터 전개된 여성문제 대강연회가 있다. 이 모임은 재일조선인 대중단체의 적극적인 지지와 찬조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 자리에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신간회 도쿄지회, 도쿄조선노동조합, 학우회, 프로예술동맹 도쿄지회, 신흥과학연구회,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삼총해금동맹 등의 찬조 연설이 있었다.
근우회 도쿄지회는 1929년 이후에는 실제 활동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신간회 도쿄지회의 자연 해산과 함께 조선 내 근우회의 해체를 기다리지 않고 일본 각지의 지회와 함께 해산했다. 근우회의 이밖의 일본지역 조직은 교토(京都)와 오사카(大阪)에 지회가 있었다.
참고문헌
- 『식민지시대 재일조선인운동 연구』(김인덕, 국학자료원, 1996)
- 「신간회 동경지회의 활동에 대하여」(水野直樹, 『신간회연구』, 동녘, 1984)
- 「在日朝鮮女性運動-槿友會を中心に-(上)」(李順愛,『在日朝鮮人史硏究』(4), 1978.12)
- 『동아일보』(19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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