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이상규(李祥奎)이다. 1920년 일본에서 조선고학생동우회 결성에 가담했다. 1922년 11월에 도쿄에서 결성된 공산주의계의 단체인 북성회(北星會)에 참가했고, 동시에 손극영, 최갑춘, 백무 등과 함께 도쿄조선노동동맹회를 창립했다. 이듬해 6월에 결성된 재일본조선무산청년회의 간부로 활동했다.
도쿄조선노동동맹회는 같은 시기에 결성된 오사카조선노동동맹회와 합동으로 전국적인 재일조선인 노동단체를 설립할 것을 계획했지만, 관동[關東] 대지진의 영향 등으로 진전되지 못했다. 1924년부터 안광천(安光泉), 이여성(李如星), 김상철 등과 협력하여 재일조선인 무산청년과 노동자의 단결을 적극 도모했다.
1925년 재일조선인 노동단체의 전국조직을 결성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도쿄의 다른 조선인단체 및 간사이(關西)의 조선인 노동단체와 연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 창립을 준비하고, 1925년 2월 22일 결성대회를 맞아 의장을 맡는 동시에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의장으로 선언, 강령, 규약의 가결을 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