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남안에 있으며 전곡리 유적과 유사한 석기를 반출하였다. 1989년 처음으로 발견되어 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1992년까지 4차례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발굴된 2개의 지점들은 임진강 남안에 연결된 현무암대지 남단의 구릉 위에 있으며, 금파리마을에서 장파리로 통하는 도로변에 있다.
유물은 첨두형(尖頭形)의 양면 가공된 주먹도끼, 뾰족끝찍개, 가로날도끼, 찍개, 긁개, 다각면원구, 망치돌 등과 함께 많은 석핵, 박편과 석편, 그리고 반입석재들이 발견되었다. 대부분이 석영암 또는 규암(硅岩)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날카로운 날을 가진 대형 박편 제작이나 주먹도끼 제작시에 양면 가공이 두드러진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석기의 일반적인 형태는 전곡리에서 출토된 것들과 유사하다. 직접타격법과 대석법(臺石法) 등의 비교적 원시적인 방법으로 제작하였고 2차 가공이 많지 않다. 한탄강 · 임진강 유역의 구석기문화 전통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유물은 퇴적층 속에서 분산되어 출토되기도 하지만, 수혈상(竪穴狀)의 웅덩이 속이나 바닥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강이 범람할 때 물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으나, 일부의 웅덩이는 인공적으로 조성되거나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구석기 유적의 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구석기시대의 주거생활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쪽의 제2지점에서는 많은 수의 박편과 석편들이 모암(母岩), 망치돌, 다양한 석핵들과 함께 발견되어 석기 제작지점일 가능성이 높다.
구석기유물은 현무암 위에 남아 있는 강퇴적층 상부인 갈색 또는 적색조(赤色調)의 점토층 속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이 층은 1∼2m 정도의 두께를 가지며, 아래는 두께 3m 내외의 황갈색조의 굵은 모래층으로 되어 있다.
현무암반 위에서는 20∼30cm 크기의 천석들이 깔려 있었다. 이 퇴적물들은 임진강이 현무암대지 위에 활동하고 있을 때 이루어진 것이며, 상부의 점토성 퇴적물은 범람원으로 남아 있었을 때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일대의 현무암은 전곡리 유적에서와 같이 철원지역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전곡리에서는 약 서기전 27만년 전후의 것이 가장 늦은 시기의 것으로 판명된 바 있어서, 이와 같은 연대일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현무암 상부의 퇴적물은 적어도 중부 홍적세(中部洪積世) 말기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