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율동과 당하동, 교하동 일대에는 장명산(102m)에서 뻗어 내리는 산기슭을 따라 100여 기가 넘는 탁자식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군부대의 군사시설물을 조성하는 과정에 많은 수의 고인돌이 파손되어 지금은 20여 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다율동의 고인돌은 교하중학교 주변과 인근의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 남아 있다. 군부대 안에는 원래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군사시설물을 조성하면서 대부분 없어지게 되었고, 5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었다. 이 중 한 기(제5호 고인돌)가 1988년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 당시 이 고인돌의 무덤칸은 무너져 있었고, 하부구조도 제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훼손되었다. 따라서 이 고인돌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구와 유물은 이미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군부대 공사를 하면서 밀어낸 흙을 정리하는 과정에 구멍띠토기(공렬토기) 입술조각과 민토기 바닥부분이 각각 1점씩 나왔다.
이와 같은 토기 종류는 당하동, 교하동, 옥석리 유적 등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집자리에서 나온 바 있기 때문에 다율동 고인돌의 연대를 살피는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옥석리 집자리에서 나온 나무숯을 가지고 분석한 절대연대값은 서기전 10∼5세기 사이에 속하는 것으로 나왔다.
한편, 다율동 제5호 고인돌 주변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뗀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구석기시대의 특징을 지닌 석기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지역에 대한 폭넓은 발굴조사가 뒤따른다면, 청동기시대보다 훨씬 앞서는 시기의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