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는 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은 경기도 양주시와 연천군, 남쪽은 경기도 고양시, 서남쪽은 한강을 경계로 경기도 김포시와 접하며, 서쪽과 북쪽은 임진강을 경계로 북한의 개성시 장풍군과 접한다. 접경지역 특성상 안보·평화 관광지가 많다. 판문점은 비무장지대 내 공동경비구역으로, ‘널문리’ 주막거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1972년 조성된 임진각국민관광지에는 자유의 다리, 전쟁납북자기념관, 통일공원 등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73.9㎢이고, 인구는 51만 1308명이다. 파주시청은 아동동에 있다.
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한 파주시는 동쪽은 경기도 양주시와 연천군, 남쪽은 경기도 고양시, 서남쪽은 한강을 경계로 경기도 김포시와 접하며, 서쪽과 북쪽은 임진강을 경계로 북한의 개성시 장풍군과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6°41′~127°01′, 북위 37°42′~38°07′이다. 접경지역 특성상 안보 · 평화 관광지가 많다. 판문점은 비무장지대 내 공동경비구역으로, ‘널문리’ 주막거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견학은 사전 신청이 필요하며 남북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임진각국민관광지는 1972년 조성되었으며, 망배단, 평화의 종, 자유의다리, 전쟁납북자기념관, 통일공원, 평화누리공원 등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73.9㎢이고, 인구는 51만 1308명이다. 행정구역은 4개 읍[문산읍 · 조리읍 · 법원읍 · 파주읍], 9개 면[광탄면 · 탄현면 · 월롱면 · 적성면 · 파평면 · 군내면 · 장단면 · 진동면 · 진서면], 10개 행정동[교하동 · 운정1동 · 운정2동 · 운정3동 · 운정4동 · 운정5동 · 운정6동 · 금촌1동 · 금촌2동 · 금촌3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위 행정 단위로 22개 법정동, 485개 행정리, 128개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파주시청은 아동동에 있다.
동북에서 남서로 뻗은 광주산맥과 북쪽 경계를 따라 동서로 이어진 마식령산맥 사이에 자리해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징을 가진다. 동쪽에는 감악산(紺嶽山: 674m)과 노고산(老姑山: 401m), 금병산(錦秉山: 293m), 팔일봉(八日峰: 464m), 앵무봉(鸚鵡峰: 622m)이 경기도 양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는 황룡산[135m]과 명봉산[245.3m] 등이 경기도 고양시와 경계를 이룬다. 중앙에는 파평산(坡平山: 496m), 봉서산(鳳棲山: 214.5m), 월롱산(月籠山: 229m), 박달산(朴達山: 363m) 등이 남쪽으로 가면서 낮게 펼쳐져 있다.
주요 하천으로 북서쪽과 서쪽 경계를 흐르는 임진강과 서남쪽을 흐르는 한강이 있다. 서북, 동남 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오랫동안 침식을 받았기 때문에 하천의 대부분이 서북, 동남 방향으로 흐른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하류 부근에는 평야지대가 발달해 있다. 교하, 금촌, 탄현 지역의 교하평야, 월롱과 파주 일부 지역의 월롱평야, 파주를 중심으로 연천, 고양, 양주 지역의 파주평야는 모두 충적평야이다.
임진강 하류 지역은 만조 때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는데, 이 때문에 탄현면과 장단면의 하안(河岸) 가에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였다. 예전에는 해수 피해가 자주 발생하였고 홍수 시 만조가 겹치면 문산읍까지 해일 피해를 입기도 하였으나, 인공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피해가 크게 줄어들었다. 지질은 시생대에 속하는 운모편마암과 편마암, 그리고 석회암이 분포하고 있다.
1991~2020년까지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1.0℃이고, 여름 최고기온은 28.7℃, 겨울 최저기온은 -8.7℃, 연강수량은 1,295.8㎜이다.
삼한시대 파주는 마한(馬韓)에 속하였다. 이후 백제와 고구려가 이 지역을 놓고 전쟁을 벌였고,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 ?375)과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 374413)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475년 고구려의 영토가 된 이후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 술이홀현(述尒忽縣)[술미홀현(述彌忽縣)], 칠중현(七重縣), 천정구현(泉井口縣), 장천성현(長淺城縣)의 5개 현이 설치되었다.
이후 신라 진흥왕(眞興王: 534~576) 때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삼국통일 시기에 고구려와 신라가 지금의 적성(積城) 지역을 두고 전쟁을 벌였는데, 이때의 전장이 바로 칠중성(七重城)이었다. 칠중성은 임진강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로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이 일어났던 곳이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765) 시기에 대대적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파해평사현이 파평현(坡平縣), 술이홀현이 봉성현(峯城縣), 칠중현이 중성현(重城縣), 천정구현이 교하군(交河郡)으로 장천성현은 장단현(長湍縣)으로 바뀌었다.
고려 전기인 1018년(현종 9)에 파평현은 장단현의 속현이 되었고 봉성현은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었다. 그 뒤 1174년(명종 4)에는 봉성현이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되면서 감무(監務) 대신 현령이 파견되었다. 중성현은 적성현(積城縣)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장성현은 상서도성(尙書都省)의 관할에 있다가 1062년(문종 16) 개성부에 예속되었다.
조선 전기인 1393년(태조 2) 서원현이 주민들의 진정으로 서원군으로 승격되었고, 파평현을 병합하여 원평군으로 개편되었다. 다시 원평군에 교하현이 통합되며 원평도호부가 되었으나, 이후 교하현이 분리 · 독립하였다. 1459년(세조 5)에 원평도호부가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 1418~1483)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목으로 승격하였고, 파주라는 이름도 이때 등장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및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파주는 파평(坡平)과 서원(瑞原)이 합쳐진 이름이다.
초기에는 파주(波州)라 하여 물과 관련된 뜻을 지녔는데, 이는 이 지역을 흐르는 임진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임진강은 한강과 연결되어 한양으로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중요한 수로였으며, 조선 후기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 강을 통한 교역과 물자 이동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교하(交河)라는 이름 역시 ‘교차하는 강’이라는 뜻으로,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다. 이후 지역의 위상이 높아지고, 파평 윤씨(坡平 尹氏)와 같은 명문 가문이 번성하면서 이를 지명에 반영해 지금과 같은 파주(坡州)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의 파주시는 옛 파주와 교하, 적성, 그리고 휴전선 이남의 옛 장단군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895년(고종 32) 부 · 군제가 실시되며 파주군이 되어 한성부의 관할이 되었으며, 다음 해 13도가 설치되면서 경기도 관할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하군 전역과 양주군, 고양군, 적성군(積城郡) 일부가 각각 파주군에 폐합되어 주내면, 천현면, 월롱면, 광탄면, 조리면, 임진면, 파평면, 와석면(瓦石面), 청석면(靑石面), 탄현면, 아동면(衙洞面) 등 11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934년에는 청석면과 와석면을 합면하고 교하면으로 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자, 종래 연천군의 관할이었던 적성면과 남면이 편입되었으며, 그다음 해에 남면이 양주군에 이속되었다. 1963년에는 전 장단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 임진면에 편입됨에 따라 이웃 연천군과의 행정구역 조정이 대폭 이루어졌고, 1972년에는 장단군의 장단면, 군내면, 진서면, 진동면이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아동면이 금촌읍으로,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각각 개칭, 승격하였으며, 1979년 군내면 백련리 통일촌(統一村)에 군내출장소(郡內出張所)가 설치되었다. 1980년 주내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가 1983년에는 파주읍으로 개칭되었고, 같은 해 양주군 백석면 기산리와 영장리가 광탄면에, 파평면 이천리가 문산읍에 편입되었으며, 광탄면 영장출장소(靈場出張所)가 설치되었다.
1987년 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양주군 백석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교하면 상지석리의 일부가 조리면에 편입되었으며,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개칭, 승격하였다. 1996년 3월 1일 파주군이 시로 승격하여 도농 복합형 파주시가 되고, 금촌읍이 금촌1동과 금촌2동으로 나뉘었다. 2002년 4월 1일 교하면과 조리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2003년 교하읍 일대에 운정신도시가 착공되었다. 2011년 금촌1동을 금촌1동, 금촌3동으로 분동하였고, 교하읍을 폐지하고 교하동, 운정1동, 운정2동, 운정3동을 설치하였다.
선사시대 유적으로 적성면 가월리의 파주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坡州 佳月里와 舟月里 遺蹟)[1994년 지정], 월롱면 덕은리의 파주 덕은리 주거지와 지석묘군(坡州 德隱里 住居址와 支石墓群)[1966년 지정]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교하읍의 파주다율리 · 당하리지석묘군(坡州多栗里 · 堂下里支石墓群)[1992년 지정]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관방 유적으로 탄현면 성동리의 파주 오두산성(坡州 烏頭山城)[1991년 지정]과 적성면 구읍리의 파주 칠중성(坡州 七重城)[2002년 지정]은 사적, 월롱면 덕은리의 파주월롱산성지(坡州月籠山城址)[2004년 지정]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 유산 가운데 광탄면의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1963년 지정]과 영장리의 파주 보광사 동종(坡州 普光寺 銅鍾)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가운데 파주 보광사 동종은 1995년 파주 보광사 숭정칠년명 동종(坡州 普光寺 崇禎七年銘 銅鐘)이라는 명칭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지금의 경기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8월 지정 해제되고 보물로 승격되었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는 광탄면의 보광사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1979년 지정]과 파주 보광사 목조보살입상[2010년 지정], 진동면의 파주마애사면석불(坡州磨崖四面石佛)[1995년 지정], 탄현면의 파주 검단사 아미타불회도(坡州 黔丹寺 阿彌陀佛會圖)[2014년 지정] 등이 있다. 광탄면 용미리의 파주 혜음원지(坡州 惠蔭院址)[2005년 지정]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2013년 사적으로 지정된 법원읍 동문리의 파주 이이 유적(坡州 李珥 遺蹟)이 대표적이다. 파주 이이 유적 안에는 자운서원(紫雲書院)과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 廟庭碑)가 있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는 파평면 눌로리의 파산서원(坡山書院)[1983년 지정]과 금릉동의 교하향교(交河鄕校)[1983년 지정], 파주읍 파주리의 파주향교대성전(坡州鄕校大成殿)[1992년 지정]이 있다. 이 외에도 향교와 서원으로 적성면 구읍리의 적성향교(積城鄕校), 월롱면 덕은리의 용주서원(龍洲書院) 등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주1과 주2인 파주 장릉(坡州 長陵)[1970년 지정]과 파주 삼릉(坡州 三陵)[1970년 지정], 파주 소령원(坡州 昭寧園)[1991년 지정], 파주 수길원(綏吉園)[1991년 지정]은 모두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 탄현면 갈현리에 조성된 파주 장릉은 인조(仁祖: 15951649)와 인조의 비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 15941636)의 능이다. 조리읍 봉일천리에 조성된 파주 삼릉은 예종(睿宗: 14501469)의 비 장순왕후(章順王后: 14451461)와 성종(成宗: 14571494)의 비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 영조(英祖: 16941776)의 장자 효장세자(孝章世子: 17191728)[진종(眞宗)]와 그의 비 효순왕후(孝純王后: 1716~1751)의 능이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묘 가운데 광탄면 분수리의 파주 윤관장군묘(坡州 尹瓘將軍墓)[1988년 지정]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 탄현면 금승리의 황희선생묘(黃喜先生墓)[1976년 지정], 탄현면 법흥리의 정연묘역(鄭淵墓域)[1993년 지정], 파평면 율곡리의 이세화선생묘(李世華先生墓)[1981년 지정], 파주읍 향양리의 성혼선생묘(成渾先生墓)[1981년 지정], 파주읍 연풍리의 윤곤선생묘(尹坤先生墓)[1987년 지정], 파주 이이 유적 안에 위치한 신사임당묘(申師任堂墓)와 이이선생묘(李珥先生墓), 진동면 하포리의 허준묘(許浚墓)[1992년 지정]는 각각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묘역으로는 진동면 하포리의 사재김정국묘역(思齊金正國墓域)[2003년 지정]이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월롱면 덕은리의 춘곡정탁묘역(春谷鄭擢墓域)[2000년 지정], 교하읍 당하리의 파평윤씨정정공파묘역(坡平尹氏貞靖公派墓域)[2002년 지정], 진동면 서곡리의 유항한수묘역(柳巷韓脩墓域)[2003년 지정]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신도비 중에는 조리읍 장곡리의 이회선생신도비(李懷先生神道碑)[1984년 지정]가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적석면 무건리의 김덕함묘및신도비(金德함墓및神道碑)[1993년 지정], 광탄면 분수리의 심지원묘및신도비(沈之源墓및神道碑)[1992년 지정]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 탄현면 오금리의 파주 공효공 박중손묘 장명등(坡州 恭孝公 朴仲孫墓 長明燈)[2001년 지정]은 보물로, 문산읍 사목리의 황희선생영당지(黃喜先生影堂址)[1976년 지정]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건물로는 문산읍 사목리의 반구정(伴鷗亭)[1983년 지정]이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파평면 율곡리의 화석정(花石亭)[1974년 지정]이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황희(黃喜: 13631452),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만년에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논했던 정자가 남아 있다.
근대 문화유적으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임진각(臨津閣), 통일공원(統一公園), 판문점(板門店)과 자유의다리(自由의다리)[경기도 기념물, 1996년 지정] 등이 있다. 자유의다리는 임진강의 남과 북, 분단된 국토의 남북을 잇는 가교로서, 길이는 약 83m이다. 이 외에 장단면 동장리에는 2004년에 각각 국가등록문화재[지금의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된 파주 구 장단면사무소(坡州 舊 長湍面事務所), 파주 경의선 구 장단역 터(坡州 京義線 舊 長湍驛 터),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京義線 長湍驛 蒸氣機關車), 파주 경의선 장단역 죽음의 다리(坡州 京義線 長湍驛 죽음의 다리)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산남동과 송촌동 일대의 한강 하류 재두루미 도래지(漢江 下流 재두루미 渡來地)[1975년 지정]와 파주 적성면 무건리의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坡州 武建里 물푸레나무)[1982년 지정]가 있다. 다율동의 파주교하물푸레나무(坡州交河물푸레나무)는 2002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7월에 지정 해제되고 경기도 자연유산으로 재지정되었다.
무형유산으로는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지금의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된 탄현면 법흥리의 궁시장(弓矢匠)과 200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지금의 경기도 무형유산]로 지정된 탄현면 금산리의 파주금산리민요(파주금산리民謠)가 있다.
조선시대 파주 지역에는 관학 교육기관인 향교가 파주, 적성, 교하, 장단의 네 군현에 각각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보유한 사례로, 당시 지역 유림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 준다. 이 가운데 파주향교는 지금의 파주시 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건립된 향교로, 파주목 관아가 있던 곳에 위치하였다. 현재도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내삼문(內三門)과 외삼문(外三門), 교직사(校直舍) 등이 유지 · 보존되고 있다.
파주의 유명 서원으로는 파산서원, 자운서원, 용주서원, 신곡서원(新谷書院)이 있다. 이 중 파산서원은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 14971579)과 이이가 주창하여 창건된 파주 최초의 서원으로, 조선 후기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했던 전국 47개의 사원 중 한 곳이었다. 자운서원은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역 유림이 세운 곳이다. 용주서원은 백인걸을 기리고자 건립된 서원이며, 신곡서원은 윤선거(尹宣擧: 16101669)를 기린 곳이었으나 지금은 훼철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6년(광무 10) 옛 파주목 관아터에 설립된 광흥학원이 파주의 첫 근대 학교였다. 이 학교는 1909년(융희 3) 파주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으며, 이후 파주공립심상소학교와 파주국민학교를 거쳐 현재의 파주초등학교로 이어졌다.
교하군에서는 1907년 선성학원이 설립되었다. 1910년 교하공립보통학교가 되었으며 교하공립심상소학교, 교하국민학교를 거쳐 지금의 교하초등학교로 이어진다. 이후 1911년 군내공립보통학교 지금의 [군내초등학교], 1914년 사립 문창학교 지금의 [문산초등학교], 1917년 파산사설강습소[지금의 파평초등학교], 1920년 봉일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봉일천초등학교], 1923년 금촌사립보통학교[지금의 금촌초등학교]와 장파간이학교[지금의 적서초등학교], 1926년 신산공립보통학교[지금의 신산초등학교], 1931년 청석공립보통학교[지금의 청석초등학교] 등이 잇달아 설립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1942년 임진면[지금의 문산읍]의 문산공립농업학교가 처음 개교한 뒤 1951년 아동면 야동리[지금의 야동동]로 이전하여 지금의 문산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병설하였으며, 문산농업고등학교는 1967년 문산종합고등학교를 거쳐 2004년 문산제일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55년에는 천현면[지금의 법원읍]에서 율곡중학교가 개교하였고, 이후 1959년 파주여자중학교[지금의 파주광일중학교], 1961년 임진고등학교[지금의 문산고등학교]와 병설 중학교[지금의 문산북중학교], 1962년 파주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의 파주여자고등학교], 1963년 율곡고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고등 교육기관으로는 2003년 탄현면 금승리에서 웅지세무대학교가 파주 지역 첫 대학으로 설립되었으며, 2008년 파주읍 봉암리에 두원공과대학교 파주캠퍼스가 개교하였다.
2025년 3월 1일 기준 파주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85개, 초등학교 62개, 중학교 29개, 고등학교 19개, 특수학교 2개, 전문대학 3개 웅지세무대학교, 두원공과대학교 파주캠퍼스, [서영대학교 파주캠퍼스]가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2022년 기준 9개의 공연장, 9개의 영화관, 7개의 미술관, 1개의 시민회관, 1개의 문화원, 1개의 전수회관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 문화시설 및 공간으로는 농경유물전시관, 영집궁사박물관, 두루뫼박물관, 취영루 만두 박물관, 파주교육박물관, 꿈을찾아서엘비스프레슬리기념관, 파주 장단콩 전시관,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 출판도시, 금산리 민요마을, 파주 영어마을이 있다. 파주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대표적 축제로는 파주 장단콩 축제, 파주개성인삼축제, 심학산돌곶이축제, 어린이책잔치, 헤이리 판 페스티벌, 율곡문화제, 임진강 민속축제, 파주 해넘이 축제, 파주예술제 등이 있다.
파주 지역의 중요한 민속놀이로는 원평민속농악놀이를 들 수 있다. 원평(原平)은 파주의 옛 이름이다. 농악놀이는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전래되어 오는 독특한 고유의 민속놀이로서, 옛날에는 어느 지방에서나 성행했으나 이 고장에서는 한동안 소멸되었던 것을 10여 년 전부터 일으켜 경기농악의 원형을 재연하게 된 것이다.
농악놀이는 음력 정월, 4월 주3, 5월 단오, 7월 백중, 8월 한가위 [추석] 등 전통 명절이나 뜻깊은 날에 행해졌다. 평소에는 농사일에 종사하면서 두레패를 조직해 공동 작업의 능률을 높이고,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계절마다 놀기도 하였다. 또한 가을에 수확이 끝나면 동네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걸립농악(乞粒農樂)을 꾸려 고을마다 돌며 놀이를 벌이기도 하였다.
오래전부터 지내는 것으로 알려진 동제로는 ‘심학산 산신제’가 있다. 심학산(尋鶴山, 193.5m)은 예로부터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3년 주기로 못자리가 끝나는 음력 3월마다 주변의 5개 리 사람들이 합동으로 날짜를 정해 자정에 제를 올렸다. 산 상봉에 있는 넓적한 바위를 ‘복바위’라고 하며, 여기를 제단으로 하여 소머리를 바치고 제물을 올려 축문을 읽는 등 모든 절차를 엄숙히 진행한다. 산신제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동네별로 음식을 장만해서 먹으며 각각 포장을 치고 함께 어울려 논다. 이때 무당들이 3일간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 소원 성취를 빌며 굿을 하는데 굿이 끝나는 대로 하산한다.
파주에는 지형이나 지명의 유래, 인물에 얽힌 전설 등 신화적 색채를 지닌 설화가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 「소개비냥의 전설」은 자신의 힘을 믿고 행패를 부리다가 더욱 힘이 센 장사를 만나서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이다.
탄현면 대동리에 있는 소개비냥은 옛날에는 험준한 절벽을 이루었으며, 아래쪽은 수심이 깊었고 벼랑 위로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살던 김승경은 힘이 장사였으나 행패가 심해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그는 말을 타고 소개비냥을 지나던 중, 맞은편에서 말을 타고 오던 젊은 초립동이와 길을 두고 다투었다. 화가 난 김승경이 초립동이를 발로 걷어차 강물로 떨어뜨렸으나, 초립동이는 말과 함께 단숨에 벼랑을 뛰어 올라왔다. 놀라 달아나던 김승경은 곧 붙잡혀 한쪽 팔과 다리를 꺾이는 벌을 받았고, 이후 크게 뉘우쳐 세 아들을 바르게 가르쳤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화는 적성면 두지리(斗只里)[두자리(頭者里)] 앞강에 있던, 말이 물에 머리를 담그고 있는 듯한 형상의 용머리[龍頭山]에 얽힌 전승이다. 옛날 이곳에 살던 구두쇠 노인이 시주를 청하러 온 중의 부탁을 거절하자, 중이 용의 목에 해당하는 곳을 가리키며 “여기가 명당이니 묘를 쓰면 큰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노인이 그 자리에 묘를 쓰자 혈맥이 끊어져 핏물이 솟구쳤고, 끝내 노인의 집안은 망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 적성면 장좌리의 「장자못전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 893~973)이 강을 건너갈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강물이 말라서 길이 열려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는 「여음탄전설(如飮灘傳說)」, 윤관(尹瓘: 1040~1111)이 죽자 그의 여진족 첩인 웅(熊)이 몸을 던져 순사하였다는 「곰소전설[熊潭傳說]」, 3,000명의 도둑이 웅거하여 그 이름이 되었다는 월롱산 뒤편에 있는 삼천도둑골의 지명유래담 등이 전해 내려온다.
이 고장에 구비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와 타령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는 경기도 지방 민요의 일반적 특징이다. 노동요 중에는 「모내기 소리」가 대다수로, 이 고장이 평야지대로 논농사가 주를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모심기 소리는 크게 여덟 종류로 나뉘며, 파주 지역에서는 「열소리」와 「허나기로구나」가 잘 알려져 있다. 「열소리」는 주로 경기 중부 지역의 모심는 소리로, 하나부터 열까지 세기를 반복하며 메기고 받는 형식의 노래이다. 「허나기로구나」는 황해도 연백평야에서 생겨났으나 파주 지역뿐 아니라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 · 포천시 · 김포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등지에서도 불렸다. 파주 지역의 「허나기로구나」는 받는 소리가 “허나 허나 허나기로구나”인데, ‘허나’란 수 ‘하나’를 의미한다.
「범벅타령」은 4음 2보의 운율이 정연한 가창 민요로 가락은 단조롭고 느리며, 가사는 남편이 샛서방을 둔 아내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여 샛서방을 쫓아내는 극적인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설화적 민요이다. 민요와 소설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노래이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 / 이도령이 나려와서 여보여보 문을 여오 / 계집년의 거동보소 문열랜 소리에 깜짝 놀래 김도령 주체를 어찌할까 / 삼대사대 내려오던 뒤지 속에다 집어넣고 / 금거북 자물쇠로 어슥비슥 채워놓고 / 문열러 나가면서 계집년이 하는 말이 / 외방 장사 나간다드니 아닌 밤중에 웬일이오 / 이도령 하는 말이 / 고개고개 넘어가서 돌팔일 만났거늘 / 일년신수를 보니까는 삼대사대 내려오는 뒤지로 해서 / 안된다기에 뒤지를 캐러 들어왔소 / …”와 같다. 문답 형식과 해학성이 뛰어난 희곡적인 내용은 지난날 우리 조상들의 오락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2022년 기준 파주시의 토지 지목별 현황을 보면 임야가 44.7%, 전 · 답이 26.2%, 대지가 5.2%, 도로가 2.6%, 공장용지가 2.8%이다. 파주시는 임진강과 한강 하류의 유역 평야에 자리 잡아 기름진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경지 가운데 논은 74.9㎢, 밭은 38.66㎢에 달한다. 이들 농경지에는 법원읍 삼방리의 애룡저수지, 광탄면의 마장리 마장저수지와 발랑리 발랑저수지, 조리읍 장곡리의 공릉저수지 등이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은 미곡으로, 교하와 탄현 지역의 미곡 생산량이 가장 많았다. 파주시의 대표적인 농산물 브랜드로 알려진 장단콩은 군내면에서 가장 넓게 재배된다. 채소류와 특용작물, 과실류 등은 대부분 적성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며, 파평면과 군내면 지역에서의 생산량도 많다. 농가 수는 7,175호, 농가인구는 1만 7547명으로 전체 산업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종사자는 전체 인구의 21.2%를 차지하며, 제조업 사업체는 총 1,487개로 교하동과 탄현면에 많이 소재하고 있다. 가장 많은 사업체 수를 보유한 업종은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 금속가공 제품, 인쇄 및 기록매체 복제업이었다. 파주는 과거 수도권 개발유보지역에 속해 있고 군사분계선에 가까이 접해 있어 2차산업과 3차산업의 발달이 부진했으나, 통일로와 자유로의 개통으로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신도시와 산업단지가 개발되면서 지속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파주시의 산업이 획기적으로 성장한 시점은 1990년대 후반이다. 수도권 정비계획이 개정되고 1996년 3월 파주가 도농 복합시로 개편되면서 1997년 12월 「제1차 경기발전5개년계획: 1998~2002」에 파주를 서북 해안권의 중심 도시, 남북 교류 중심지, 반도체 · 통신산업 등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새로운 산업단지 구축 지역으로 성장시킨다는 발전 계획을 담았다.
1997년에는 파주 출판문화정보 단지[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1998년에 파주탄현 중소기업 전용단지[파주탄현중소기업전용국가산업단지] 건설 계획이 발표된다. 1999년에는 오산과 금파 지방산업단지[오산일반산업단지 · 금파일반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되면서, 2003년 파주 디스플레이 단지와 문산과 월롱의 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잡혔다. 2006년 4월 LG 필립스 LCD가 월롱 지역에 168만 6000㎡[약 51만 평] 규모의 파주LCD일반산업단지를 조성하였다. LG 필립스 LCD는 2008년 7월 LG디스플레이로 회사명을 변경하였다.
이후 한국에서 생산되는 LCD의 절반이 파주시와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LG디스플레이에서 만들고 있다. 특히 파주 사업장에서는 주로 대형 TV용 LCD 및 OLED 패널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 7세대 공장[P7], 8세대 공장[P8, P9]을 비롯해 OLED 생산 라인[M1, M2], 모듈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R&D 센터가 입지하고 있다. 파주시는 LG 필립스 LCD가 입주한 2006년 이후 5년간 경기 31개 시군 평균 인구증가율 2%보다 2.5배 높은 5.2%로 도내 인구증가율 3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2008년부터 5년간 지역내총생산[GRDP]은 17% 증가해 경기도 내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적으로 성공한 도시가 되었다.
파주의 전통적인 상업 공간으로는 재래시장이 있는데. 끝자리가 1·6일에 열리는 금촌전통시장과 연풍시장, 2·7일에 열리는 봉일천전통시장, 3·8일에 열리는 광탄경매시장, 4·9일에 열리는 문산자유시장, 그리고 5·10일에 열리는 적성전통시장과 신산시장이 있다. 이 밖에도 선유시장, 파주시장, 자유시장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되며, 5일장이 열릴 때는 규모가 더욱 커져 활기를 띠곤 한다.
또한 현대적인 상업 공간으로서 교외형 쇼핑몰인 대형 프리미엄 아웃렛이 여럿 들어서 있다. 가장 먼저 신세계가 진출한 이후로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이 문을 열었으며, 아웃렛 주변으로 헤이리 예술마을,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파주 영어마을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어 여행객들이 쇼핑과 여행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
파주시를 지나는 고속도로는 평택파주고속도로 1개뿐이며, 현재는 서울특별시 및 경기도 광명시 구간이 공사 중이기 때문에 고양시와 파주시 구간만 따로 서울문산고속도로라고 부르고 있다. 2015년 10월 30일에 착공해 2020년 11월 7일에 개통되었으며, 이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자유로와 통일로 등의 교통량을 분산하고 더 짧은 시간 안에 운정신도시와 서울 도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재는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가 건설 중으로, 전체 노선은 12개 구간으로 나누어 추진되고 있다. 총연장은 263.4㎞로, 2029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주를 지나는 국도는 국도 1호선, 국도 37호선, 국도 77호선이다. 국도 1호선은 일명 ‘ 통일로’라고 부르며,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평안북도 신의주를 잇는 대한민국의 종축 국도이다. 파주 구간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파발에서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에 이르는 49.2㎞에 해당한다. 파주에서 서울 도심까지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파주 발전의 원동력이 된 곳으로, 1972년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왕복 4차선의 도로로 확장되었다.
국도 37호선은 경기도 연천군에서 넘어와 적성면-파평면-문산읍을 지나 당동IC에서 자유로와 만나며 끝난다. 연천군 전곡읍 방면으로 왕복 4차로 확장이 완료되어 경기도 최북부 지역인 연천군, 포천시, 가평군 등으로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국도 77호선은 ‘ 자유로’라고도 불리며 경기도 고양시에서 넘어와 한강- 임진강 변을 따라 올라온 후 통일대교 앞 자유IC에서 끝난다. 자유로 개통에 따라 행주대교에서 임진각까지 도로 소통이 좋아졌으며, 서울 방향으로 통행하는 차량의 일부를 흡수함으로써 교통량을 분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교하신도시, 탄현면, 문산읍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파주시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이다.
파주시는 국가지원지방도 56호선 · 국가지원지방도 78호선 · 국가지원지방도 98호선과 지방도 357호선 · 지방도 358호선 · 지방도 359호선 · 지방도 360호선 · 지방도 363호선 · 지방도 364호선 · 지방도 367호선 · 지방도 371호선 · 지방도 375호선 등 총 12개의 노선이 통과하는 교통 요충지이다.
그 가운데 국가지원지방도 56호선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에서 출발해 파주시 조리 · 법원 · 광탄 · 적성 · 파주읍을 지나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으로 이어지며, 국가지원지방도 78호선은 김포시 월곶면에서 시작해 교하 · 탄현 · 문산을 거쳐 연천군과 포천시로 연결된다. 또한 국가지원지방도 98호선은 수도권 제2순환선으로 월롱 · 교하 일대를 지나 고양시로 이어진다.
지방도의 경우 지방도 357호선이 고양시 덕양구에서 출발해 일산 · 운정을 거쳐 탄현면 갈현리에 이르며, 지방도 358호선은 김포시 대곶면에서 시작해 교하 · 조리 지역을 지나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에 닿는다. 지방도 359호선은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서 출발해 문산읍까지 이어지고, 지방도 360호선은 탄현면에서 적성 · 파평을 지나 포천시 가산면에 연결된다. 지방도 363호선은 고양시 덕양구에서 출발해 탄현면으로 이어지며, 지방도 364호선은 문산읍에서 시작해 적성 · 파평 · 군내면을 거쳐 가평읍에 닿는다.
지방도 367호선은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서 출발해 적성 · 군내면을 지나 연천군 장남면으로 이어지고, 지방도 371호선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에서 출발해 고양시와 파주를 거쳐 연천군 백학면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지방도 375호선은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서 출발해 적성면을 지나 연천군 미산면으로 연결된다.
파주의 주요 철도로는 경의선이 있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로 총연장은 499㎞이며 1906년 개통하였다. 그러나 남북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서울–문산 구간 46㎞만 운행해 왔다. 경의선 파주 구간은 운정역, 금촌역, 파주역, 문산역, 운천역, 임진강역 등에 정차역이 있으며 도라산역을 종착역으로 하고 있다. 지역을 관통하는 철도이자 유일한 교통수단의 역할을 하여 역을 중심으로 도로와 상가가 발달하였다.
1999년에는 경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4년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과 중앙선이 하나의 노선으로 연결되어 경의 · 중앙선으로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서울 도심까지의 통근이 한층 수월해졌으며, 특히 문산역 · 운정역 · 금촌역은 주요 거점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운정신도시 개발 이후에는 운정역 일대를 중심으로 인구 유입이 늘어나 교통수요가 급증하였다.
광주산맥의 영향을 받아 저산성 산지들이 동쪽에 치우쳐 기복을 이루고 있으며, 임진강이 한강으로 흘러들면서 주변에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져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임진강 일대는 자연경관이 빼어나 생태 관광지로 발달하였다. 임진강의 하상은 물살이 빠르고 강변에는 층층이 톱날 모양으로 깎인 절벽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른바 임진강 적벽은 약 60만 년 전에 생성된 수직 절벽으로 유역 전 구간에 걸쳐 길게 분포한다. 그중에서도 장파리 적벽, 자장리 적벽, 주월리 적벽이 파주 지역을 대표하는 임진강 적벽으로 꼽힌다.
파주는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속한 특수성으로 인하여 안보 · 평화 관광의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다. 판문점은 남북분단의 현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으로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공동경비구역이다. 과거에 ‘널문리[널빤지로 만든 문짝]’라 불렸던 주막거리가 있어서 판문점이라 부르게 되었다. 판문점은 사전 견학 신청 후 관광이 가능하였으나 남북 관계에 따라 견학 가능 여부는 달라지고 있다.
또 다른 안보 · 평화 관광지로는 임진각이 있다. 정식 명칭은 임진각국민관광지이지만, 보통 임진각 또는 임진각 평화누리 등으로 부른다. 1972년 12월에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실향민들이 망향 · 추모할 수 있는 망배단을 비롯한 평화의 종, 자유의다리,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통일공원, 평화누리공원 등이 위치하고 있다.
근래 파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탄현면 통일동산지구에 자리한 헤이리 예술마을이다. 1994년 구상이 시작되어 1997년에는 370여 명의 예술가가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마을이자 문화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이 마을의 탄생 배경에는 파주 출판도시의 역할이 컸다. 1988년 낙후된 출판 환경 개선을 위해 출판인 조합이 결성되었고, 출판도시 조성 사업이 추진되던 과정에서 여러 변동이 생기자, 출판인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문화예술 공간에 대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통일동산지구에 부지를 확보하여 헤이리 예술마을을 태동시켰다.
헤이리는 주어진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는 자연 친화적 설계를 지향하여 수로를 자연 하천 그대로 활용하고, 모든 건축물을 3층 이하로 제한하였다. 현재 마을 안에는 작가들의 작업실, 박물관, 갤러리 등 100여 개의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어 방문객들에게 예술과 휴식을 동시에 제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파주시의 중북부, 임진강 남쪽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7㎢이고, 인구는 4만 8413명이다. 문산읍 행정복지센터가 선유리(仙遊里)에 있다. 전반적으로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정면(馬井面), 칠정면(七井面), 신속면(新屬面), 운천면(雲泉面), 오리면(烏里面)의 일부 리를 병합하고 임진강의 이름을 따서 임진면으로 하였다. 1973년 7월 1일 임진면을 문산읍으로 개칭, 승격하고 월룡면의 내포리(內浦里)를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에는 파평면의 이천리(梨川里)를 편입하였다. 2014년 한자 명칭을 기존의 문산(汶山)에서 보다 지적인 의미를 담은 문산(文山)으로 변경하였다. 문산읍은 경의 · 중앙선 철도가 지나며, 문산역이 이 지역의 중요한 교통 허브로 기능한다.
농업이 주요 산업 중 하나로 쌀과 채소 같은 농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문산리(文山里), 선유리, 이천리, 당동리(堂洞里), 사목리(沙鶩里), 마정리(馬井里), 운천리(雲泉里), 장산리(長山里), 임진리(臨津里), 내포리 등 10개의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중남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7.42㎢이고, 인구는 2만 7704명이다. 조리읍 행정복지센터가 봉일천리(奉日川里)에 있다. 북쪽과 동쪽에 검단산, 오두산이 위치하며, 남쪽은 공릉천이 흘러 일대의 충적지를 중심으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조리동면(條里洞面)이라 하다가 조리면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 1914년 4월 군면 폐합에 따라 교하군 아동면의 일부, 지석면 상지석리의 일부와 고양군 사리대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조리면으로 하였다. 2002년 4월 1일 읍으로 승격하였다. 공릉산 정상에서 사면으로 뻗은 가지 모양의 산줄기를 따라 골짜기마다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서울특별시와 연결되는 통일로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로 이어지는 고봉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인근에는 서울문산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봉일천리, 죽원리(竹院里), 뇌조리(弩造里), 오산리(梧山里), 장곡리(獐谷里), 등원리(登院里), 능안리(陵案里)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중동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1.3㎢이고, 인구는 9,391명이다. 법원읍 행정복지센터가 법원리(法院里)에 있다. 북서쪽에 파평산, 남동쪽 경계에 노고산, 남쪽 면계에 금병산, 중앙 남부에 자웅산(雌雄山: 264.3m) 등이 읍 전체를 감싸고 있다. 서쪽에서 중앙 쪽으로 관류하는 동문천과 읍 하단의 삼방천과 연풍지 주변에 가늘고 긴 하곡(河谷) 평야가 발달해 있으나, 농업 기반 시설은 미흡한 반면 산지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1960년대에는 읍내에 미군 부대가 있어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이 발달하여 군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한 이후부터는 쇠퇴를 거듭했으며, 현재는 1만 명을 밑돌고 있다. 법원리, 갈곡리(葛谷里), 오현리(梧峴里), 직천리(直川里), 웅담리(熊潭里), 금곡리(金谷里), 동문리(東文里), 가야리(加野里), 대릉리(大陵里), 삼방리(三防里)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중앙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2.27㎢이고, 인구는 1만 3612명이다. 파주읍 행정복지센터가 파주리(坡州里)에 있다. 중앙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봉서산이 읍 전체를 굽어보는 형세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평지이다. 북부에 향양천, 남쪽 경계에 문산천이 관류한다. 전체 면적 중 경지면적은 넓은 편이 아니며,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우세한 지역이다.
조선시대까지 파주목에 속했으며, 지역의 중심지였다. 1895년 부 · 군제가 실시된 이래 파주군 관할의 몇 개 면으로 분할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주내면(州內面), 백석면(白石面)의 대부분, 자곡면(紫谷面) 도내동(都內洞)의 일부, 칠정면 향양리(向陽里)가 합쳐져 7개 리로 편성되고, 파주의 시내라는 의미에서 ‘주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0년에 주내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3년 파주읍으로 개칭되었다. 파주리, 연풍리(延豊里), 부곡리(釜谷里), 백석리(白石里), 봉암리(烽巖里), 봉서리(鳳棲里), 향양리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남동쪽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5.53㎢이고, 인구는 1만 314명이다. 광탄면 행정복지센터가 신산리(新山里)에 있다.
조선 후기까지는 파주군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주군(楊州郡) 백석면(白石面) 마장리(馬場里) 일부, 조리면 화산리(花山里)가 병합되어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83년에 양주군 백석면의 기산리(基山里)와 영장리(靈場里)가 편입되었으며, 동시에 영장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7년에 기산리의 일부가 다시 양주군 백석면에 이관되었다. 양주군 백석면과 광적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문산천으로 합류하면서 넓은 여울을 이루는데, 이 때문에 ‘광탄(廣灘)’이라 하였다.
북쪽 경계에 금병산, 동쪽 끝에 앵무봉, 남서쪽 경계에 명봉산, 중앙에 박달산 등 산지가 넓게 분포해 있다. 이러한 산지에 광범위한 묘역이 집중되어 있다. 하천으로 비암천(比巖川), 분수천(汾水川), 문산천, 보광천 등이 면의 곳곳을 관류하며, 주변 일대에 약간의 평야지대가 있다. 신산리, 용미리(龍尾里), 분수리(汾水里), 창만리(倉滿里), 마장리, 발랑리(發郞里), 방축리(防築里), 영장리, 기산리 등 9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1.72㎢이고, 인구는 1만 2694명이다. 탄현면 행정복지센터가 축현리(丑縣里)에 있다. 동쪽 끝의 기간봉(旗竿峰: 237.7m)과 월롱산 자락이 길게 뻗어 있다. 서쪽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 [황해]로 흘러드는 합류 지점으로, 남부의 공릉천과 대위지천(大韋只川)이 흐르면서 갈현평야라는 드넓은 곡창지대를 만들었다.
본래 교하군 지역으로 탄포의 이름을 따서 탄포면이라 하여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현내면(縣內面)과 신오리면(新五里面)의 대부분, 교하군 청암면(靑巖面) 송촌리 일부, 파주군 오리면 능동리 일부, 자곡면(紫谷面) 덕옥리 일부를 합하고, 탄포와 현내의 이름을 따서 탄현면으로 하였다.
오두산통일전망대와 통일동산, 헤이리 예술마을, 프로방스마을, 경기미래교육 파주캠퍼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체인지업캠퍼스,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등이 있어 파주 지역 관광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축현리, 금승리(金蠅里), 낙하리(洛下里), 문지리(文智里), 오금리(吾今里), 금산리(錦山里), 만우리(萬隅里), 대동리(大洞里), 성동리(城洞里), 법흥리(法興里), 갈현리(葛峴里) 등 11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중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7.14㎢이고, 인구는 8,253명이다. 월롱면 행정복지센터가 위전리(葦田里)에 있다. 동쪽 경계에는 월롱산 자락이 면내로 뻗어 있으며, 남동부 지역에도 일부 산지가 분포한다. 북쪽에서 동쪽에 걸쳐 문산천이 면 경계를 이루고, 남부에는 금촌천과 삽교천이 흘러든다. 전형적인 평야 지대로서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월롱산과 골짜기가 많아 자실면[자곡면]이라 하고 용은리와 덕옥리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리면(烏里面)과 백석면(白石面) 현암리 · 오라리의 일부, 광탄면 두만리의 일부, 교하군 아동면 아동리의 일부를 합하고, 월롱산의 이름을 따서 ‘월롱면’이라 하였다. 1973년 내포리가 문산읍에 이관되었다. 이후 LG디스플레이가 입주한 파주LCD일반산업단지와 LG화학 · LG이노텍 등이 입주한 월롱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현재 위전리, 덕은리(德隱里), 영태리(英太里), 도내리(都內里), 능산리(陵山里) 등 5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파주시의 북동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8.9㎢이고, 인구는 6,625명이다. 적성면 행정복지센터가 마지리(馬智里)에 있다. 산지로 동쪽에 경기도 연천군 · 양주시와의 경계 지점에 감악산이 있고, 북부 중앙에 중성산(重城山: 148m), 북서부에 국사봉(國事峰: 150m)이 있다. 임진강이 북쪽 경계를 길게 통과하고, 그 지류들인 간파천(干坡川), 장현천(墻峴川), 가월천(佳月川), 설마천(雪馬川), 답곡천(沓谷川) 등이 북쪽에서 중앙 전체를 관류하면서 하천 연안에 취락이 분포한다.
적성은 원래 고구려 칠중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칠성현으로 개칭하고 고려 때 적성현으로 변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적성군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면, 서면의 대부분, 마전군(麻田郡) 군내면 삼화리와 장단군 고남면(古南面) 장좌리(長佐里), 양주군 영근면(嶺斤面) 하원리와 파주군 파평면 천천리 일부를 합하고 19개 리로 개편하면서 연천군 적성면이 되었다. 1945년 다시 파주군 관할이 되었으며, 1946년 남면이 양주군으로 분리되었다.
1963년에 늘목리, 삼화리가 연천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 장파리(長坡里)가 파평면에 편입되었다. 마지리, 구읍리(舊邑里), 객현리(客峴里), 가월리(佳月里), 주월리(舟月里), 두지리(斗只里), 설마리(雪馬里), 무건리(武建里), 식현리(食峴里), 장현리(墻峴里), 적암리(赤巖里), 율포리(栗浦里), 어유지리(魚遊池里), 자장리(紫長里), 답곡리(沓谷里), 장좌리 등 16개의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중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9.04㎢이고, 인구는 3,525명이다. 파평면 행정복지센터가 금파리(金坡里)에 있다. 동쪽에 파평산과 광평산(鑛平山: 262m)[영평산] 자락이 면내로 향한다. 임진강이 서쪽 경계를 따라 굽이쳐 흐르고, 북부에 답곡천, 눌로천과 북서에서 중앙으로 관류하는 두포천(斗浦川) 유역에 평야가 분포한다.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394~491) 시기에는 파해평사현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파평현으로 개칭되었다. 파평산과 광평산의 명칭에서 연유하여 파평(坡平)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조선시대에 풍덕리, 천천리, 눌로리(訥老里)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칠정면(七井面) 이천리 일부, 신속면(新屬面) 일부, 적성군 서면(西面) 식현리, 도장리 일부를 합하고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적성면 장파리가 편입되었고, 1983년에 이천리가 문산읍으로 이관되었다.
파평 윤씨의 본관으로 눌로리에 천연 연못인 파평용연(坡平龍淵)이 있는데, 이곳에서 파평 윤씨의 시조인 윤신달이 탄생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금파리, 율곡리(栗谷里), 두포리(斗浦里), 마산리(麻山里), 눌로리, 덕천리(德泉里), 장파리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북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3.23㎢이고, 인구는 725명이다.
대부분 지역이 오랫동안 장단군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진현내면(津縣內面), 진동면(津東面), 중서면(中西面), 진북면(津北面)의 각 일부와 개성군 동면(東面) 백동음리(白冬音里) 일부가 합쳐져 7개 리로 개편되며 군의 중심 지역에 위치한다 하여 군내면이라 하였다. 1963년 전 지역이 파주군 임진면의 관할로 편입되었다가, 1972년 장단군의 장단면, 진서면, 진동면이 파주군에 편입될 때 함께 이관되었다. 군내면에서 민간인이 거주하는 곳은 백연리(白蓮里) 통일촌과 조산리(造山里)의 대성동(臺城洞)뿐이다.
원래 이 지역은 북방한계선과 가까워 민간인이 거주하던 지역이 아니었으나, 1972년 민통선 북방 지역이 개발되고 제대 장병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로 조성되었다. 대성동은 ‘ 자유의 마을’이라고도 불리며,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민간인 거주지역이 되었다. 1979년 백연리에 군내출장소가 설치되어 주민들이 거주하는 조산리 대성동, 백연리 통일촌(統一村)을 비롯하여 군내면 · 장단면 · 진동면 · 진서면 등 4개 면의 행정을 관할하였다. 군내출장소는 2011년 5월 1일 장단출장소로 개칭되었고, 2021년 7월 1일 장단면 행정복지센터로 승격하여 군내면 · 장단면 · 진동면 · 진서면의 행정을 관할하고 있다. 백연리, 조산리, 정자리(亭子里), 읍내리(邑內里), 송산리(松山里), 점원리(點元里), 방목리(芳木里)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북서쪽 끝, 휴전선[군사분계선] 바로 남쪽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4.82㎢이다.
조선시대에는 장단군 장단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존 장단면의 일부 구역이 조정 · 통합되어 장단군 장단면이 되었으며, 군청 소재지가 위치하였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으로 면의 대부분이 군사분계선 이북에 편입되고, 남측에 남은 일부 지역만 실효 지배가 이루어졌다. 1972년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파주시 장단면이 되었다. 현재 대부분 지역이 비무장지대[DMZ] 안에 위치해 민간인 거주지가 없다.
파주시의 북부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3.16㎢이고, 인구는 415명이다. 임진강이 동쪽과 남쪽 경계를 거쳐 U자 형태를 그리며 흐른다. 북서쪽에 휴전선이 살짝 걸쳐 있고 주4이 북부 중앙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최북단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장단군의 진동면과 장서면(長西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진동면과 장서면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장단군 진동면이 되었다. 1972년 파주군에 편입되었으며,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파주시 진동면이 되었다. 2000년을 전후하여 동파리(東坡里)에 실향민 마을인 해마루촌이 조성되어 일부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성을 활용한 DMZ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동파리, 용산리(龍山里), 하포리(下浦里), 서곡리(瑞谷里), 초리(哨里) 등 5개 법정리가 있다.
파주시의 북서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16㎢이고, 인구는 160명이다. 동쪽에 대덕산(大德山: 237m), 남동쪽에 백학산(白鶴山: 229m) 등 주로 동부에 산지가 집중되어 있다. 휴전선이 남부를 지나며, 북방한계선이 중앙부를 가로지르고 남방한계선이 남동쪽 경계선을 통과한다.
조선시대에는 송림현(松林縣) 지역으로 1418년(태종 18) 임강현(臨江縣)에 편입되었다. 1458년(세조 4) 장단군에 편입되며, 송림 읍내 남쪽에 자리해 송남면(松南面)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송남면과 송서면의 일부, 진북면의 조산리 일부와 개성군 청교면, 동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진서면이라 하였다. 1972년 파주군에 편입되어 파주군의 관할이 되었다.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파주시 진서면이 되었다.
모든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서쪽의 선적리에 자유의 집이 위치하며 이곳에서 남북한 간 연락 업무가 이루어진다. 금릉리(金陵里), 마장리(馬場里), 어룡리(魚龍里) 등 3개 정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