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선도 ()

상팔선도
상팔선도
회화
개념
여덟 명의 신선을 묘사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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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팔선도는 여덟 명의 신선을 묘사한 그림이다. 팔선은 종리권·장과로·한상자·조국구·여동빈·이철괴·남채화·하선고 등 8신선이다. 이들은 각각 가난, 부귀, 귀족, 평민, 늙음, 젊음, 남성, 여성 등의 삶을 상징한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팔선은 각각 독특한 도상을 가졌다. 예컨대 여선인 하선고는 연꽃 줄기나 국자를 든 젊은 여인의 도상으로 나타난다. 현재 남아 있는 팔선도는 대부분 18∼19세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김홍도의 『군선도 8폭 병풍』 등이 대표적이다. 팔선도는 하례용 병풍이나 축수도로 그려지다 민화의 소재로 사랑받게 된다.

정의
여덟 명의 신선을 묘사한 그림.
개설

팔선도(八仙圖)는 종리권(鍾離權), 장과로(張果老), 한상자(韓湘子), 조국구(曹國舅), 여동빈(呂洞賓), 이철괴(李鐵拐), 남채화(藍采和), 하선고(何仙姑) 등 8인의 신선을 묘사한 그림이다. ‘팔(八)’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문학작품에서 여러 사람을 지칭할 경우 ‘등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팔선이란 곧 군선(群仙) 또는 모든 신선을 상징하는 의미를 내포하며 가난, 부귀, 귀족, 평민, 늙음, 젊음, 남성, 여성 등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각각의 팔선에 대한 개별적인 고사는 중국 당송 문인의 기록에서부터 나타나다가 팔선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인 것은 원대의 일이다. 청대 조익(趙翼)의 『해여총고(陔余叢考)』에는 이들 팔선이 그려지기 시작한 유래는 분명하지 않지만 원 이전에는 그려진 것이 없어 원나라 때에 비로소 팔선도가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중국의 도교사원인 영락궁(永樂宮)의 벽화 중 원나라 때에 그려진 「팔선과해도(八仙過海圖)」는 바다를 건너는 팔선의 모습을 표현한 최초의 예로서, 하선고 대신 서선옹(徐仙翁)이 표현되어 있다.

이후 서선옹이 하선고로 대치되고 하선고가 팔선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명대 이후이며, 조선시대의 팔선도들은 대개 하선고가 포함된 팔선들이 주로 그려지고 있다. 이들 이외에 용성공(容成公), 이이(李耳), 동중서(董仲舒), 장도릉(張道陵), 장군평(蔣君平), 이팔백(李八百), 범장생(范長生), 이주선생(爾朱先生) 등의 촉나라 팔선이 있으며, 두보(杜甫)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노래한 이백(李伯), 하지장(賀知章), 이적지(李適之), 소진(蘇晉), 최종지(崔宗之), 장욱(張旭), 초수(焦遂) 등의 팔주선(八酒仙)도 있다.

내용

조선시대에 주로 그려지던 팔선은 각각 살던 시대는 다르지만 모두 흥미있는 일화를 지니며, 몸에 지니는 물건도 달라 독특한 도상을 가진다. 이러한 도상은 한대(漢代) 이후 꾸준히 편집제작되어 온 신선 전기집과 화보에 의해 확립되었다. 우선 종리권은 팔선 중의 우두머리로서 순양자 여동빈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때 사람으로 장년의 모습으로 도복을 입고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부채, 주로 파초선을 들고 있다.

장과로는 당나라때 방사(方士)로 늙은이의 모습이며 나귀를 거꾸로 탔거나 혹은 어고간자(漁鼓簡子 : 죽통)를 든 모습으로, 때로는 박쥐를 동반하기도 한다. 여동빈은 당나라때 사람으로 화양건(華陽巾)을 쓰고 칼을 등에 메거나 들고 있는 서생의 모습으로 조선시대에 팔선 중에서도 단독으로 즐겨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철괴는 철괴를 든 불구의 거지형상으로 연기나는 호로병을 들고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상자는 9세기경의 실존 인물로 항상 피리를 불고 다녔다고 하며, 대개 피리나 어고간자를 가진 젊은이로 묘사된다. 조국구는 송나라 태후의 동생으로 중년의 모습이며 관복을 입고 벼슬을 한 사람의 상징인 박판을 든 도상으로 묘사된다. 남채화는 당말기의 은사(隱士)로 누더기 적삼을 입고 꽃바구니 혹은 꽃을 든 젊은 선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팔선 중 유일한 여선인 하선고는 역시 당나라때 사람으로 연꽃줄기나 국자를 든 젊은 여인의 도상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신선도에서 이들 팔선은 단독이나 둘씩 또는 군선도 중에 묘사되는데, 「요지연도(瑤池宴圖)」에서 서왕모의 요지연에 초대받아 가는 해상군선의 묘사 중에 표현되거나 해상군선도의 주제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팔선 관련 신선도들은 대부분 18∼19세기에 제작된 작품들이지만 『열성어제』에서 숙종의 「열선도(列仙圖)」와 「제요지대회도(題瑤池大會圖)」의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7세기에는 이러한 형식의 그림이 성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조선후기 김홍도의 작품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군선도 병풍」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삼선도」등을 통해 이들 각각의 팔선들의 도상적 특징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요지연도는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崑崙山) 요지에서 열리는 연회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연회장면과 함께 팔선을 비롯한 신선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약수(弱水)를 건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소위 ‘팔선과해’의 고사를 담은 것이다.

이러한 ‘팔선과해’ 형식을 독립시킨 듯한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의 행렬을 묘사한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김홍도의 「해상군선도」로 대표될 수 있다. 순묘조(純廟朝) 「왕세자탄강계병(王世子誕降契屛)」과 정묘조(正廟朝) 「왕세자책례계병(王世子冊禮契屛)」은 「요지연도」와 같은 형식을 가진 궁중행사 기록화로써 단순한 신선도의 의미를 넘어 신선의 고사에 왕실의 영락을 기탁한 또 다른 형식의 궁중행사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팔선도는 궁중회화의 하례용 병풍이나 상류계층의 축수도, 또는 일상적인 장식적 용도의 신선도로 즐겨 그려지다가, 이후에는 민간의 생활민화의 소재로 널리 사랑받았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해여총고(陔余叢考)』
『열성어제(列聖御制)』권9(卷九) 숙종편(肅宗篇)
『열선전전(列仙全傳)』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踪)』
『장서각소장가례도감의궤』(이성미·강신항·유송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중국문화 중국정신』(C.A.S 윌리암스 저, 이용찬 외 공역, 대원사, 1989)
『산해경』(정재서 역주, 민음사, 1985)
「「중국 원명대의 사회변동과 도교 신선도」(조인수, 『미술사학』23호, 2009)
「『선불기종』삽도연구」(박도래, 『미술사학연구』 269호, 2011)
「순·고종시대 도석인물화 연구」(이경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7)
「조선후기 요지연도에 대한 연구」(우현수,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17, 18세기 조선왕조 시대 신선도 연구」(박은순,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山西寺觀壁畵』(柴澤俊, 文物出版社,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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