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에 수묵으로 그려졌고, 크기는 세로 27.0㎝, 가로 22.1㎝이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제작된 『화원별집(畵苑別集)』에 실려 있다. 이 화첩에 속한 다른 그림들의 수준과 더불어 황집중(黃執中)의 묵포도 그림의 기준작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포도도는 송말(宋末) 원초(元初)에 활동한 선승(禪僧) 일관(日觀)에 의하여 창시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포도는 주로 선승이나 서(書)에 뛰어난 사대부들이 여기(餘技)로 즐겨 그린 소재이다.
중국에서는 사군자(四君子)와 같이 뚜렷하게 한 분야나 양식으로 정형화(定型化)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재 자체가 수묵만으로 묘사하기 용이하여 시대가 내려오면서 계속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빈번하게 그려지면서 뚜렷한 정형을 이루었고, 괄목할 만한 발전이 확인된다. 포도 그림 한 가지만으로 이름을 남긴 문인화가(文人畵家)들 외에 조선백자(朝鮮白磁) 중에서도 문양의 차원을 넘어 강한 회화성이 간취되는 것이 적지 않다. 이들 조선백자의 표면을 장식한 포도 문양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포도를 그린 화원(畵員)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신사임당(申師任堂)과 더불어 가장 먼저 포도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황집중은 포도를 묵매(墨梅)나 묵죽(墨竹)에 뒤지지 않는 문인화의 소재로 부각시킨 대표적인 화가이다.
황집중의 「묵포도도」의 특징은 먼저 소폭의 작은 그림으로 시계(視界)가 좁은 단순한 구성, 사선(斜線)의 원용에 의한 포치력(布置力 : 배치)의 뛰어남을 지적할 수 있다.
또 다양한 형태의 변화 있는 잎의 표현, 과장이 없는 사실적인 포도송이, 농담(濃淡)이 강조된 색의 대비, 동그란 포도 알에 있어 선염(渲染 :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하는 일) 효과에 의한 입체감 표현 등이 눈에 띈다.
한편 사생을 통하여 체득한 표현 기법이면서도 형사(形似 : 대상의 외형을 닮게 그리는 화법)에 얽매이지 않고 소재의 특징을 잘 포착하여 간략히 나타냄으로써 문인화로서의 격조가 배어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