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중인 출신이었던 풍류객들은 그 당시 중요 음악 수용층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고, 그들은 정악(正樂)이라는 새로운 갈래의 음악문화를 후세에 남겨 주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담당하였다.
풍류객들은 그들의 전문 분야에 따라서 두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그 한 부류는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 같은 정악의 성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가객(歌客) 등인데, 그 대표적인 풍류객들이 바로 『청구영언』의 저자 김천택(金天澤), 『해동가요』의 저자 김수장(金壽長), 『가곡원류』의 저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瑛) 등이었다.
이들은 한국음악사의 발전에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시조작품을 남겨놓음으로써 국문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다른 부류의 풍류객들은 대풍류·줄풍류·사관풍류·보허자(步虛子)·자진한잎(數大葉)·청성자진한잎(淸聲數大葉) 같은 정악의 기악 발전에 공헌한 금객(琴客) 등이다.
양반 사대부처럼 많은 지식을 지녔던 금객 출신의 풍류객들은 여러 가지 거문고악보를 후세에 남겨 주었는데,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의 저자 이득윤(李得胤), 『금보신증가령(琴譜新證假令)』의 신성(申晟), 『어은보(漁隱譜)』의 김성기(金聖器), 『유예지(遊藝志)』의 서유구(徐有榘),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의 이규경(李圭景), 『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統論)』의 윤용구(尹用求) 등이 그 대표적인 금객들이었다.
이와 같은 가객이나 금객 출신의 풍류객들이 남겨 준 정악의 전통은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풍류방에서 이왕직아악부를 거쳐 현재는 전통음악의 한 갈래로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