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인 1946년 고려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주자 겸 운영위원이었던 이동훈이 새한교향합창단을 창단하고 지휘자로 활동하다가 6·25동란으로 부산에 피난해서도 계속 합창운동을 벌였다.
서울수복과 더불어 1953년 10월에 새한을 필그림(pilgrim)으로 개칭하고 지휘자 이동훈은 미8군 군목실의 음악부장이 되어 서울 용산의 미군영내의 주요한 채플(chapel)을 중심으로 하여 필그림성가단으로 하여금 성가봉사에 주력하도록 하였으며 미국성가의 신작을 발표하는 한편, 교회 밖에서도 합창연주회를 계속 열었다.
수많은 성가 및 합창곡의 레코드를 제작하기도 하였으며 일본 각지에 순회공연도 가진 바 있다. 1974년 11월 14일 지휘자 이동훈이 교통사고로 죽자 필그림합창단은 그의 미망인 김병숙의 운영으로 이끌어 나갔으며 장남 수철이 지휘자로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맡아 합창운동을 여러 해 펴다가 미국유학으로 떠나고 그의 누이동생 정희가 색달리 여성지휘자로 연주회를 자주 가졌다. 필그림합창단의 레퍼터리는 종교음악을 주축으로 다양하고 화려한 곡들로 우리나라 합창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