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동북으로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보이는 분지에 있는 대규모 절터로, 1988년 판교∼구리 간 고속도로가 건설될 당시,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 등 4곳의 건물터가 드러나고 금동불상, 기와, 도자기, 동으로 만든 불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기와 중에서 “광주동사(廣州桐寺)”라는 글씨를 새긴 명문기와[銘文蓋瓦]가 발견되어 이곳이 동사의 옛터라는 사실과 10세기경 새롭게 지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하여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서 ‘동사’라는 절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 이 절에 대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초창된 후 고려시대 들어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석탑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유물을 통해 조선 전기까지는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로 남아 있었으나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람배치는 3탑 3금당인지 2탑 2금당인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금당 터는 넓은 평지로 약 2m 높이의 기단 위에 거칠게 다듬은 사각 초석이 줄지어 있다. 초석 배열을 통해 금당은 정면 7칸 측면 6칸의 2층 불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신라시대 경주 황룡사 금당에 필적하는 규모이다. 금당의 중앙에는 본존불 대좌의 하대석으로 생각되는 팔각형 석재가 남아 있는데 지름이 5.1m에 달하여 당대 최대규모인 것으로 판단된다.
금당 터 동편에는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과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이 나란히 서 있어 금당이 이 두 탑을 마주하고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에는 신라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이성산성(二聖山城)이 있고, 절터 동쪽에 고곡(古谷) 또는 궁마을로 알려진 옛 마을이 펼쳐져 있어, 이 일대가 백제의 하남 ‘위례성’이라는 설도 있다.
2011년 7월 ‘하남 춘궁동 동사지’에서 ‘하남 동사지’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현재 다보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다.
노출된 금당(金堂) 터와 불대좌(佛臺座), 건물배치 등이 독특하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중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 초기 하남을 중심으로 한 한강 이남 지역 불교계의 중심 사찰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