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예천 용궁현감을 역임한 유교목(柳敎睦)이 1836년(헌종 2)에 건축하여 대를 이어 살아오다가 1953년 유시익(柳時益)이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남촌(南村)의 중심에서 북쪽으로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주택은 행랑채 · 사랑채 · 안채들이 각기 독립되어 있지만 사랑채와 안채는 튼ㅁ자를 이루어 양반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안채의 중앙에는 안마당 가득히 정면 3칸의 대청을 드려놓았는데, 보간[樑間]은 1칸으로 비교적 폭이 좁다. 오른쪽 칸의 뒤쪽 반 칸에는 아래위 2층으로 된 수장공간(收藏空間)을 설치하여놓았다.
대청의 왼쪽에는 안방 2칸과 부엌 2칸을 마당 쪽으로 길게 내려뽑아 배열하였고 이와 대칭으로 대청의 오른쪽에는 1칸 크기 건넌방과 1칸 마루에 이어 중간방 1칸을 배치하였다. 정면 3칸의 사랑채 왼쪽에는 앞쪽으로 약간 나앉은 중문간채 4칸이 접하여 있다.
사랑채의 평면구성은 왼쪽의 전면 2칸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뒤쪽으로 사랑방을 드렸으며, 오른쪽 칸은 앞이 개방된 마루가 놓여 있다. 사랑채 왼쪽의 중문간채는 사랑채에 접한 중문간 왼쪽으로 광을 3칸 배열하여 안마당의 앞을 막고 있다.
행랑채는 4칸의 왼쪽 끝에 대문간이 설치되었으며 오른쪽으로 머슴방 2칸에 이어 마구간이 놓여 있다. 안채는 잡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놓고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가구(架構)는 3량가(三樑架)로 들보 위에 각대공(角臺工)을 세운 간략한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잡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다.
마루의 상부 가구는 5량가로 충여[衝梁] 위에 낮은 받침을 두고 소로를 놓아 외기틀을 받고 있으며 중도리와 외기틀 안에 우물반자를 꾸몄다. 사랑방 앞 툇마루의 천장은 별스럽게 고미반자를 쳤다.
사랑채 지붕의 오른쪽 마무리는 합각으로 꾸몄지만 왼쪽은 중문간의 한 단 낮은 박공지붕 위에 다시 박공지붕이 겹쳐지는 꼴을 하고 있다.
이 주택은 평면구성에 있어서 안대청에 설치된 2층의 수장공간인 광의 배치에서 예스러움을, 그리고 건넌방과 중간방 사이에 부엌 대신에 시설된 마루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느끼게 하는 건물로서 조선 후기 주택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