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 때 고구려는 북으로 부여, 남으로는 낙랑과 접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고구려 수도가 압록강 중류에 있어 특히 부여와의 분쟁이 잦았다.
13년(유리왕 32)에 부여병이 내침하자 왕은 아들 무휼(無恤 : 대무신왕)로 하여금 이를 물리치게 하였다. 무휼은 적의 군사가 많음을 알고 산속에 잠복하여 있다가 부여병이 학반령 아래 이르자 복병으로 부여군을 쳐서 물리쳤다.
22년(대무신왕 5) 그가 아끼어 기르던 신마(神馬) 거루(駏䮫)를 잃은 적이 있는데, 뒤에 이 말이 부여말 100여필을 거느리고 함께 학반령 아래 차회곡(車廻谷)에 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학반령은 고구려 수도와 부여를 잇는 교통상 요로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