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오늘날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인 도다이사가 건립되기 전까지 그 절터에 존재하였던 사찰이다. 그러므로 도다이사의 모태가 되었던 사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찰의 건립자와 창건연대에 관한 기록이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는 어려우나 사찰의 이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한국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즉, 한국계 이주인 또는 그와 관계가 깊었던 일본인들에 의해서 건립되었을 것이다.
도다이사의 창건연기설화에 의하면, 도다이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그 곳에는 한국사와 곤쇼사[金鐘寺]라는 절이 있었다 한다. 이 두 사찰의 위치는 현재 대불을 모시고 있는 대불전(大佛殿)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에 한국사, 동쪽지역에는 곤쇼사가 각각 자리하고 있었고, 오늘날의 도다이사는 한국사와 곤쇼사가 합쳐져 생겨난 사찰이다. 그러나 이 두 절의 통합과정에서 한국사의 승려들은 조정의 공평하지 못한 처사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크게 반발했다. 왜냐하면 그 통합은 곤쇼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쇼무왕[聖武王]은 곤쇼사에 귀의하였고, 또 도다이사의 창건에 주도적 구실을 하였던 로벤[良弁] 또한 곤쇼사계의 사람이었다. 이에 힘을 입은 곤쇼사의 승려들은 한국사의 토지를 몰수하여 도다이사를 창건하려 하였다. 이처럼 불공평한 처사에 강하게 반발하였던 그들은 결국 강력한 국가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금 그 곳에는 한국사의 흔적을 말해주는 유적도 남아 있지 않으며, 또한 그 이름마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