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기(李復基) · 임종식(林宗植) 등과 함께 의종의 총애를 받았다. 기거주(起居注: 諫官의 하나)로 있으면서 왕의 총애를 믿고 남에게 거만하고 무관을 멸시, 사람들의 노여움을 샀다.
1170년(의종 24) 의종이 보현원(普賢院)에 행차 도중 오병수박희(五兵手博戱)를 하게 하자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쳐서 불만에 가득 찬 무신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무신의 난이 발발하여 이고(李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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