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경상도관찰출척사, 예문춘추관대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0년(공양왕 2) 6월 천추사(千秋使)로서 명나라에 가서 윤이(尹彛)·이초(李初)의 속임을 변명하고 돌아와, 12월에 서북면도관찰출척사 겸 병마도절제사(西北面都觀察黜陟使兼兵馬都節制使)를 지냈다.
1392년 7월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예문관학사로서 주문사(奏聞使)를 자청해 명나라에 가서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승인받아 이듬해 2월에 돌아왔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기로(耆老)와 백관(百官)이 도당(都堂)에 모여 국호를 의논할 때 거론되었다.
이성계(李成桂)의 고향인 ‘화령(和寧)’과, 단군·기자·위만의 세 조선을 상징하는 ‘조선’으로 압축되었다.
명나라는 기자조선을 의식하고 ‘조선’이라는 칭호를 새 왕조의 국호로 선정했으나, 조선은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문화 전통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로 추천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호를 제정하기 이전인 1392년(태조 1) 8월에 이미 단군을 동방의 첫 수명군주(受命君主: 命을 받은 군주)로서 국가에서 평양부로 해금 시제(時祭)를 지내도록 조처한 사실에서 확인된다.
1393년 9월 양광도관찰출척사(楊廣道觀察黜陟使)가 되고, 1397년 경상도관찰출척사를 거쳐, 그 해 예문춘추관대학사가 되었다. 성품이 총민(聰敏)하고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치적을 많이 쌓았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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