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돈칠(敦七). 한후유(韓後裕)의 증손이며 한용구(韓用龜)의 손자이고 한긍리(韓兢履)의 아들로 한경리(韓景履)에게 입양되었다.
1844년(헌종 10)에 증광별시문과(增廣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일찍이 고위 관직에 나아가 1845년에 대사간에 이르렀다.
1849년에 당시 호조참판이던 한정교는 정사(正使) 이계조(李啓朝)를 수행하여 부사(副使)로서 중국에 사행(使行)을 다녀왔다. 1851년(철종 2) 이조참판, 1854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이후 형조참판·예조판서·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에는 대사헌, 1866년에 의정부좌참찬·판의금부사·한성부판윤을 거쳤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