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호조참판, 좌참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안악군수 이축(李軸), 재령군수 한응인(韓應寅) 등이 연명으로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사건을 알리는 고변서(告變書)를 조정에 비밀장계로 올렸다. 그 공으로 1590년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이 되고 좌참찬에 올라 청천군(淸川君)에 봉하여졌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호조판서로 순화군(順和君)을 호종, 강원도로 피난하였고, 이듬해 한성부판윤에 전임되었으며, 진하 겸 주문사(進賀兼奏聞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와 이조판서가 되고, 1595년 사은 겸주청사(謝恩兼奏請使)로 또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글씨를 잘 써서 사자관(寫字官)을 지냈고, 광주(廣州)의 「우언겸묘표(禹彦謙墓表)」를 썼으며, 필적으로 모간(模刊)한 것이 있다. 평소 교유(交遊)를 즐기지 않았으며, 근면하고 검소하여 죽은 뒤 장사를 치를 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호는 정익(靖翼)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백곡집(柏谷集)』
- 『기언(記言)』
- 『순암문집(順菴文集)』
- 『대동서법(大東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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