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석보(錫甫), 호는 월악(月嶽). 한위겸(韓撝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진(韓縝)이고, 아버지는 집의 한태동(韓泰東)이며, 어머니는 정영한(鄭英漢)의 딸이다.
공주 출신으로 1699년(숙종 25) 생원시에 합격, 1705년 참봉으로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07년 정언·지평·수찬이 되었다. 1713년 동지사(冬至使) 조태채(趙泰采)의 일행으로 김상직(金相稷)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714년 부수찬·부교리를 거쳐, 1718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1720년(경종 즉위년)에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1727년(영조 3)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는 팔포(八包)의 법을 엄히 지켜 역관(譯官)이나 비록 대관(大官)이라도 이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청렴결백한 성품이었으며 문장(文章)으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 『월악서소(月嶽書疏)』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