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공조참의, 한성부우윤,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499년(연산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공조참의|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공조참판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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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공조참의, 한성부우윤,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한백륜(韓伯倫)이며, 예종비 안순왕후(安順王后)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68년(예종 즉위년) 판관(判官)으로 강이경(姜利敬)의 집이 하사되었고,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이 되었다. 1469년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으로 응패(鷹牌)를 받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사복시부정(行司僕寺副正)이 되었는데 당상관(堂上官)의 부정(副正)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임금이 충순당(忠順堂)에 나아가 입직(入直)한 군사들을 후원에 모아서 친열(親閱)할 때 행사복시정(行司僕寺正)으로 입시(入侍)하였다. 1471년(성종 2) 공조참의가 되었으나 나이가 젊고 배우지 못하여 육조의 당상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곧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다.

이후 간통죄로 탄핵을 받았으나 1479년 직첩을 되돌려 받았다. 1484년 가선대부(嘉善大夫) 청천군(淸川君)으로, 이듬해 사재감제조(司宰監提調)가 되었으나 곧 공조참의로 교체되었다.

1487년 가선대부(嘉善大夫) 청천군(淸川君)에 이어 가선대부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가 되었으나 부적절하다는 대간들의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곧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이 되었고, 이어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이 되었다.

1490년 장인 조지산(趙智山)을 구타하여 능욕(陵辱)한 죄로 장 100대를 속(贖)바치고 고신(告身)을 빼앗겼으나 1493년 외지(外地)에 정배(定配)된 지가 오래 되었다 하여 특별히 방면(放免)되었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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