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대로 악사집안으로 증조부 윤옥(潤玉)은 순조·헌종 때의 악사, 할아버지 제홍(濟弘)은 헌종 때 단소와 젓대의 명수, 큰아버지 재홍(在弘)은 젓대, 아버지 재운(在韻)은 거문고의 대가였다. 이병문(李炳文)과 김경남(金景南)에게서 가야금을 배웠다. 1894년 6월 관립 심상소학교, 1906년 7월 보성일어야학교, 1908년 5월 중동야학교 부기과를 졸업했다. 1900년 12월 궁내부 장례원 가전악(假典樂)에 임명되어 1901년 전악(典樂), 1910년 장악(掌樂), 1911년 전악(典樂), 1913년 아악수장(雅樂手長), 1916년 아악사(雅樂師)를 거쳐, 1932년 제5대 아악사장(雅樂師長)을 역임하고, 1939년에 은퇴하였다. 1912년부터는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 가야금 교사로 정악 보급에 참여했으며, 1930년 악서편찬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으며, 1931년부터 3년간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가야금·양금 등을 가르쳤다. 1935년 편경(編磬)과 편종(編鐘)을 제작했고, 1936년에는 일본 음악계, 1937년에는 중국고악을 시찰했다.
1937년 5월 친일문예단체 조선문예회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해방 후 1945년 8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음악건설부 위원과 국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같은해 8월 국악회를 창설하고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11월 국악원으로 정식 발족한 후 위원장과 문화국장으로 활동했다. 이외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합군환영준비회 설비부 실행위원, 전조선문필가협회 추천위원, 조선영화사 발기인, 조선정악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다가 1949년 6월 22일 사망했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아악개요』(1915), 『조선악기편』(1933), 『이제악제원류』(1933), 『증보가곡원류』(1938), 『조선음악통론(朝鮮音樂通論)』(1948) 등이 있고, 통문관(通文館)에서 간행한 『양금신보(梁琴新譜)』 부록으로 「한국음악소사(韓國音樂小史)」가 있으며, 『국악50년회고록』이 유고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