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여주이씨 옥산 문중 소장 『해동명적』은 이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해동명적』을 1530년에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 다시 간행한 서첩이다. 『해동명적』은 신공제가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의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글씨를 모아 1515년경 목판본으로 간행한 법첩이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은 전·후집 중 전집을 2책으로 분권한 것으로, 후집은 없다. 1책 38면, 2책 44면 도합 82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에 실린 필적은 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초고 필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정의
이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해동명적』을 1530년에 돌에 새겨 석판본으로 개간(改刊)한 법첩.
개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은 전집을 둘로 분권한 서첩이므로 후집의 최세절의 발문이 없으나, 임창순(任昌淳) 구장본(舊藏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된 경주 서백당본과 안동 임청각본, 동국대학교 도서관본 등 4군데에 소장되어 있는 『해동명적』에는 후집 말미의 발문이 실려 있다. 발문의 내용에 따르면, 김노(金魯)가 경상도 관찰사 최세절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부친 김희수(金希壽)와 박팽년(朴彭年)의 필적을 첨가하여 석판본으로 간행해 줄 것을 청하자, 최세절이 안동부사 유희저(柳希渚)에게 부탁하여 석공을 모아 돌에 새기게 하고 도사(都事) 안현(安玹)을 시켜 상세한 교정을 보게 하여 1530년 7월에 개간 사업이 종료된 것이다.
내용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은 제2책의 표지 왼쪽 상단에 “해동명적(海東名跡)”이라고 후대에 쓴 것으로 보이는 표제가 있다. 전 · 후집 중 전집을 2책으로 분권한 것으로, 후집이 없으므로 완본은 아니다. 1책 38면, 2책 44면 도합 82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1책과 2책의 앞쪽에 “독락당인(獨樂堂印)”이라고 새긴 소장인이 찍혀 있다. 1책에는 문종, 성종(成宗), 최치원(崔致遠), 김생(金生), 승 영업(僧 靈業), 승 탄연(僧 坦然), 이암(李嵒), 신덕린(申德隣)까지 8인의 필적이, 2책에는 이강(李岡), 승 혜근(僧 慧勤), 성석린(成石璘), 박초(朴礎), 권근(權近), 하연(河演), 신장(申檣), 무명씨까지 8인의 필적이 수록되어 있다. 원래 승 탄연과 이암 사이에 이제현(李齊賢)의 필적 6면이 있어야 하는데 옥산문중본에는 누락되어 있다. 권근과 하연 사이의 필적 말미에 이첨(李詹), 정도전(鄭道傳), 정총(鄭摠), 민자복(閔子復)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지금까지 이들 4인의 필적으로 소개되어 왔으나, 이는 필적 말미에 찬자의 이름을 표기한 것일 뿐 모두 권근의 필적이다.
옥산문중본 『해동명적』에 실린 필적은 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자작 시문인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있어 초고 필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서풍은 여말선초 이후로 큰 영향을 끼쳤던 원(元) 조맹부(趙孟頫)의 송설체(松雪體)뿐만 아니라 선우추(鮮于樞)와 강리노노(康里巎巎)의 행초서풍도 여러 필적에 가미되어 있어 원대 서풍의 다양한 수용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해동명적』 석판본 연구」(유지복, 『장서각』 36, 2016)
- 「해동명적 2책」(임창순, 『도협월보(圖協月報)』 11권 12호,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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