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측(圓測, 613696)은 신라 출신 승려로 3세에 출가하여 15세에 당나라로 건너가서 평생을 지냈으며, 인도에서 귀국한 현장(玄奘, 주1의 영향을 받아 유식사상에 관한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무량의경소』, 『반야심경찬』, 『인왕경소』, 『해심밀경소』 등을 저술하였다.
『해심밀경』은 인도 주2의 소의경전인 주3를 647년에 현장이 번역한 한역본이다. 이 경전의 주석서인 원측의 『해심밀경소』는 현재 경도대(京都大) 장경서원본(藏經書院本), 대곡대본(大谷大本), 용곡대본(龍谷大本) 3종류의 필사본이 존재한다. 이 중 대곡대본 말미에는 주4 시기와 장소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이를 보면 세 사본이 모두 18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론되며, 현존 여부가 불확실한 고야산(高野山) 여의륜원(如意輪院) 소장본을 원본으로 삼은 것으로 주5
『해심밀경소』는 본래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현존하는 3종의 한문 사본은 모두 완본이 아닌 제8권의 첫 부분과 제10권이 결락된 채 일본의 『속장경』 제1편 34투(套)(17卷)와 35투(套)(89卷), 『만자속장경』 제21권[1976년]에 수록되어 있다. 이 결락 부분은 이네바 쇼오쥬(稻葉正就)가 주6에 있는 완본을 찾아 한문본으로 다시 복원한 바 주7 이후 관공(觀空)도 제10권을 복원하였고, 중국 금릉각경처(金陸刻經處)는 이 복원본을 추가하여 1981년에 총 40권 본의 『해심밀경소』를 출판하였다. 『한국불교전서』 제1책에는 『속장경』에 실려있는 부분과 함께 이네바 쇼오쥬의 복원본이, 제11책에는 관공의 복원본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해심밀경소』는 주8과 주9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에 현재 학계에서는 『해심밀경소』 교정본 작업이 진행 중에 주10
원측이 『해심밀경소』를 찬술한 시기는 주11가 주(周)를 건국한 690년 이전, 680년대라는 것이 정설이다. 측천무후 시대에는 현장을 자은삼장(慈恩三藏)이라고 칭하는데, 원측의 『해심밀경소』에는 그를 대당삼장(大唐三藏)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바가라[地婆訶羅, Skt.Divākara, 613~687]와 신도(新都)에 대한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지바가라가 장안에 온 681년 이후일 가능성, 그리고 낙양을 신도라고 칭하는 것을 근거로 당 고종이 서거한 다음해인 684년 이후일 가능성이 제기되어 주12
『해심밀경소』는 총 8품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서품(序品)」과 본문에 속하는 나머지 7품으로 구분 가능하다. 후자는 수행자들이 알아야 할 대상과 이치에 대해 논한 경(境), 이 경계에 따라 수행하고 닦는 행(行),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통해 얻는 깨달음 및 해탈을 논하는 과(科), 이렇게 다시 세 가지의 구조로 나눠진다. 즉, 제2품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제3품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 제4품 「일체법상품(一切法相品)」, 제5품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은 경계의 차별이 없음을 밝히고 있고, 제6품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 제7품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은 이 경계를 관(觀)하는 수행을 논하고 있는 것이며, 마지막 제8품 「여래성소작사품(如來成所作事品)」은 경과 행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를 밝힌 것이다. 여기서 경과 행에 해당하는 품들은 두 품씩 짝지어 구성되는데, 「승의제상품」과 「심의식상품」은 각각 진(眞)과 속(俗)의 경계에 대해 밝힌 것이고, 「일체법상품」과 「무자성상품」은 유식의 삼성(三性)과 삼무성(三無性)의 경계에 대해 논한 것이다. 「분별유가품」과 「지바라밀다품」 역시 전자에서 지(止)와 관(觀)의 수행에 대한 총체적인 수행론에 대해 먼저 서술하고, 후자에서 개별적으로 십지(十地) 및 십바라밀(十波羅蜜)을 세세히 후술하는 구조로 논하고 있다.
총 여덟 품 중 첫 번째 품인 「서품」은 네 개의 문(門)으로 나뉘는데, 『해심밀경』의 가르침을 일으킨 뜻과 제목을 설명한 문, 경의 종과 체를 설명한 문, 경이 설해진 주13적 근거와 설법의 대상이 되는 주14에 대한 문, 그리고 경문을 해석한 문으로 분류된다. 원측은 『해심밀경』의 내용에 따라 이 경은 부처님이 삼법륜(三法輪) 중 사제(四諦) 법문과 무상(無相)의 법문을 한 이후 설한 완전한 가르침, 즉 요의(了義)의 가르침이라 밝히고 주15
제2 「승의제상품」은 수행자들이 분별이 끊어진 상태의 경계를 나타내는 승의제의 오상(五相), 즉 승의제의 특징에 대해 주16 이 품에서 원측은 유식의 삼성설(三性說)과 식설(識說)과 주17의 주18설을 함께 논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승의제와 세속제를 상즉의 관계로 수렴시키고 있다.
제2 「승의제상품」이 승의제에 대해 논한다면, 제3「심의식상품」은 세속제(世俗諦)에 대해 설명한다. 원측은 심의식이 일체종자식인 제8식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데, 이 식에서 나타나는 작용에 대한 설명이 이 품의 주요 내용이다. 즉, 제8식은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제6식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분별을 일삼는 근본 종자식임을 밝혔다. 원측은 청변[淸辯, Skt.Bhāviveka, 약 500570]과 보리유지[菩提流支, Skt.Bodhiruci, 535?]의 식설을 포용하며 다루고 있으나, 진제[眞諦, Skt.Paramārtha, 499~569][^19]의 9식설은 매우 비판적으로 서술하는데, 결국 현장 등 중국 주20의 8식설을 그대로 계승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주21
제4 「일체법상품」은 유식학의 대표적 학설인 삼성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삼성이란 유가행자들이 관찰해야 할 일체법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해 논한 것인데, 이 학설에 대해 경문을 근거하여 논한 원측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란 명(名)과 상(相)의 결합 관계에 의해 알려지고 다시 명 · 상을 매개로 집착되는 세계이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이란 그러한 집착이 일어나는 실질적 근거(所依)이면서 그 자체는 연생(緣生)하는 세계이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이란 그러한 집착이 없음에 의해 현현되는 진여의 세계다. 만약 보살이 그 집착된 상들이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음(無相)을 알면, 상집[相執, 변계소집상에 대한 집착]의 훈습 종자로부터 의타기의 잡염법[識]이 생하는 일도 없어지고, 잡염법이 생하지 않으면 청정한 진여가 드러나게 주22
제5 「무자성상품」의 주요 내용은 세 종류의 무자성에 대해 의거해서 공(空)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제4 「일체법상품」에서 논한 삼성에 의거하여 삼무성을 설명하는 취지는 결국 가립(假立)된 언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주23 원측은 이 삼무성에 의거하여 일승(一乘)과 삼승(三乘) 그리고 일체개성설(一切皆成說)과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 즉 불도를 이루는 종성론(種性論) 논의까지 이어가는데, 이는 구유식의 진제와 신유식의 현장의 학설을 검토한 것이라 할 수 주24 이 품에서 원측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은 보이지만 현장이 번역한 논서들을 중심으로 구역 경론을 회통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학설을 중심으로 유식학설을 해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6 「분별유가품」은 유가의 완전한 의미를 설명한 품이다. 원측은 유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해석을 소개하고 있는데, 불교의 모든 이론과 수행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해석 그리고 지관(止觀)수행을 가리키는 해석이 있음을 소개한다. 이 품에서는 후자의 지관수행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가지관의 특징은 명(名) · 구(句) · 문(文)과 같은 언어적 요소를 지관수행에 접목시킨다는 점에 있고, 더불어 그 말과 결합된 특정 대상이 영상으로 나타날 때 그 영상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점을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은 특정 대상의 영상이 식에 의해 현현하게 된다는 유식교학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주25
제7 「지바라밀다품」에서는 원측의 수행론을 파악할 수 있으며, 수행계위론(修行階位論)과 십바라밀(十波羅密)에 대한 논의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즉 보살이 깨닫기 이전에 경과해야 하는 10단계를 논한 보살십지(菩薩十地), 이 십지에 의거한 수행인 십바라밀, 그리고 이에 대치하는 장애인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소멸된 뒤 얻게되는 깨달음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품은 주26, 진제, 현장, 원측 등으로 이어지는 유가행파의 수행계위 및 수행론에 있어 당대 동아시아 유식교학의 특징이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동아시아 유식사상사에서 인도와 중국 학승들의 해석이 융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품에서는 구역인 진제 역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의 십지계위론의 틀이 신유식의 『성유식론(成唯識論)』과 『해심밀경소』 해석에 이어졌다는 것을 볼 수 주27
제8 「여래성소작사품」은 법신 · 화신 · 수용신의 모습에 의거한 여래의 교화를 논하고 있으며, 화신의 언음에 대해 논한 부분에서는 인명(因明)과 관련한 논의도 보이고 주28
원측의 『해심밀경소』는 통일신라와 티베트의 초기 불교학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이다. 원측의 제자 도증(道證, ?~?)은 692년 신라로 귀국하였는데, 적어도 이 시기에는 원측의 저술이 신라에 전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티베트에도 전파되어 그들의 불교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까닭에 사료적 가치가 주29
더 나아가 『해심밀경소』는 식(識), 불성(佛性), 삼성(三性) 등에 관한 동아시아 유식교학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이다. 원측은 현장의 신역과 더불어 보리유지, 진제의 구역도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데, 이로 인해 지론종이 주30에 흡수되고 주31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유식사상의 계보도 엿볼 수 있기 주32 또한 『해심밀경』에 대한 소는 당의 영인(令因), 현범(玄範), 그리고 신라의 원효(元曉), 경흥(憬興) 등이 저술했지만, 원측의 『해심밀경소』가 유일하게 현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