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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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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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사르는 데 사용하는 분향기구(焚香器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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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사르는 데 사용하는 분향기구(焚香器具).
내용

인류가 일찍부터 사용해 온 향이란 ‘향내가 나는 물건’으로, 사람의 입냄새〔口臭〕나 몸때〔身垢〕의 냄새를 제거하고, 집안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갖가지 취기(臭氣)를 없애기 위하여 사용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향은 특히 고온다습한 기후로 말미암아 몸에서 냄새가 많이 풍기는 인도에서 크게 성행하였는데, 손님을 맞이할 때에는 나쁜 냄새의 기운을 없애기 위하여 마당에 향즙(香汁)을 뿌리고, 향을 몸에 바른 뒤에 맞이할 정도로 널리 쓰였다. 이와 더불어 향은 마음의 때까지도 말끔하게 씻어 준다 하여 마침내는 불교의 설법장소에까지 즐겨 사용되었다.

향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크게 도향(塗香)과 소향(燒香, 燻香)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향이란 명향(名香) 가루를 깨끗한 물에 혼합하여 몸에 바르는 방법을 말하고, 소향이란 도향의 방법과는 달리 향을 불살라서 쐬는 방법을 일컫는다. 이 두 가지 방법 중 소향의 방법에는 향을 담아서 불을 사를 그릇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니 그것이 곧 향로이다.

향로는 크게 일반적인 향로와 불교적인 향로로 구분되는데,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향로와는 달리 불교적인 향로는 불보살(佛普薩)에게 향을 공양할 때 사용되는 도구이다. 불구(佛具)의 하나인 이 향로는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서 비롯된 공양구(供養具)로 향로 1, 촉대(燭臺) 2, 화병(花甁) 2의 3개 품목 5개를 1조로 하는 오구족(五具足)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여러 공양구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향로는 중국에서는 주(周)나라 말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대(漢代)에는 박산형(博山形)의 향로가 크게 유행한다. 그 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는 불교적 향로인 병향로(柄香爐)가 발전되었고, 수(隋)와 당(唐)을 배경으로 한 정형(鼎形)·삼족형(三足形)·화사형(火舍形) 향로 등은 송(宋)·원(元)·명(明)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이후 우리 나라는 삼국이 모두 수많은 사찰을 건립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향공양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며, 향로 또한 일찍부터 전래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박산형향로와 병향로가 한두 점 전하여 올 뿐 그 유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어떠한 형태가 크게 유행하였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구려 쌍영총벽화의 귀부인행렬도, 단석산신선사마애불의 공양상,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등에서 보이는 향로의 모양으로 미루어 당시에는 병향로가 주류를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또한 1993년 12월에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의 능산리 왕궁터에서 백제유물 450여점과 함께 백제향로(百濟香爐)가 발굴되어 백제 금속공예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금속공예의 발달과 함께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조선시대까지의 향로의 기본형태를 이루고 있는 청동제고배형(靑銅製高杯形) 향로가 출현하게 되는데, 넓은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 밥그릇(鉢) 모양의 몸체와 위는 좁고 아래는 넉넉한 나팔모양 대(臺)로 구성되어 있다.

향로는 만드는 재료에 따라 크게 토제·도제(陶製)·금속제·석제·목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삼국 이후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주로 토제향로가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청자와 청동제 향로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유교가 득세하였던 조선시대에는 불교적 향로보다는 일반 제기(祭器)로서의 백자와 유제(鍮製) 향로가 널리 애용되었다.

향로는 그 형태에 따라 거향로(居香爐, 置香爐)·병향로·현향로(懸香爐)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거향로란 어떠한 지정된 장소에 배치하여 향을 공양하거나 쐬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서 박산형·정형·삼족형·장방형·원통형·상형(象形)·고배형 등이 이에 속한다.

이것과는 달리 병향로는 안치하기보다는 손에 들고 다니기에 좋도록 거향로에 20∼30㎝ 가량의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을 말하며, 현향로란 방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걸어둘 수 있게 밑이 둥근 그릇에 고리가 달려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 향로는 다시 용도에 따라 예배용[佛壇用]·완향용(玩香用)·의식행렬용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예배용 향로는 불보살에게 향을 공양하기 위하여 불단에 안치하는 것을 말하며, 완향용 향로는 향을 사름으로써 세속의 모든 냄새와 함께 번뇌망상을 사라지게 하고 청정한 법열(法悅)의 삼매경으로 들어가게 한다 하여 불교의식보다는 수도자 자신의 개인정화에 더 큰 목적을 두어 주로 승방(僧房)의 서안(書案)에 놓거나, 벽 또는 기둥에 걸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행렬용 향로란 불보살을 예배하거나 의식행렬을 선도(先導)할 때 사용되는 것을 일컫는다.

이 중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의 토제고배에 기원을 두고 있는 고배형향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배용은 불전에 배치되는 것이니만큼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향로를 조성함에 있어서도 향도(香徒)의 지극한 정성과 최고의 기술이 깃들이고, 일반공예품과는 달리 중요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불단용 향로에는 다른 용도의 향로와는 다르게 부처님께 올리는 발원문(發願文)을 새기는 것이 하나의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발원문은 은입사(銀入絲)나 선각(線刻), 또는 점각(點刻)으로 되어 있으며, 명문의 내용은 보통 발원과 함께 제작 연대와 제작자, 봉안 사찰 이름, 조성에 소요된 청동의 양, 향로의 명칭 등을 기록하고 있다.

향로의 명칭으로는 향로 외에도 화완(火垸)·향완 등이 쓰이는데, 향로란 기형에 관계 없이 향공양구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고, 화완과 향완은 밥그릇모양의 몸체에 나팔모양의 높은 대를 갖춘 고배형만을 한정하여 이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조가 원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고배형 향로는 개부(蓋部)와 신부·대부의 3부로 구성되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뚜껑이 사라지고 각 부에서도 세부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고려 전기는 대체로 세련된 곡선으로 타원형의 몸체와 날씬한 기형을 창출해 내고 있는 반면에, 고려 후기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신부가 둔중하고 직립된 원통형과 밑부분이 배부른 형태로 바뀌어 간다.

향로의 비례 또한 고려시대 전기에는 전체의 높이와 입지름의 비율이 거의 같아 정방형의 균정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지만, 후기 이후에는 향로의 대가 단축되고 입지름이 확대되어 안정감이 결여됨을 볼 수 있다.

몸체와 대의 결구방법(結構方法)은 대 정상의 돌기(突起)로써 연결하는 방법과 이와 반대로 몸체와 함께 조성된 밑바닥의 돌기를 대의 원공(圓孔)에 삽입하여 고정시키는 방법, 그리고 몸체와 대의 구멍을 관통시켜 결속하는 방법과 별도의 많은 못으로써 대부와 신부를 부착시키는 네 가지의 방법이 있다. 대체적으로 소형과 중형의 향로는 몸체와 대의 분리가 쉽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대형의 향로는 몸과 받침대가 쉽게 분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세부적인 변화와 함께 12세기에 들어서면 새롭게 본래의 고배형에 은입사의 문양을 넣은 청동제은입사향로가 탄생한다. 이것은 상감청자(象嵌靑磁)의 발생과 금선고려불화(金線高麗佛畫)의 등장과도 관련이 있으며, 왕실귀족 중심의 고려 불화와도 연관이 깊은 것으로 당시의 귀족적인 아취를 충분히 나타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숭유억불정책(崇儒抑佛政策)으로 불교가 크게 쇠락해 버린 조선시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그 찬란하였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은입사향로의 문양을 넣는 방법에는 은실을 사용하여 입사하는 선상감법과 은판을 이용하여 상감하는 판상감법이 있는데, 이 중 선상감의 방법에는 세선(細線)과 태선(太線) 두 종류가 있다. 세선은 태선에 선행하여 모든 문양의 근간을 이루는 선으로, 고려 전기 향로의 문양이 거의 세선 위주인 것과 잘 부합된다. 이어서 등장한 태선은 문양의 강조하여야 할 곳에만 사용되어 조식의 효과를 증대시킨다.

고려 전기의 문양은 세선 위주의 정교하고 치밀한 부드러운 선으로 간단명료하면서도 다분히 회화적인 성격을 띤 반면에, 후기 이후의 문양은 둔화되고 가냘픈 선으로 복잡하면서도 도식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며 명문을 지니고 있는 향로는 불교금속공예의 연구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직제(職制)와 사회상, 그리고 불교미술의 전반적인 흐름까지도 짐작하게 해 주는 것으로, 우리 나라 미술사상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

현재 국내에 전하여 오는 고배형 청동향로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비록 은입사는 되어 있지 않지만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황통(皇統) 4년(1144)명(銘)의 것이 있으며, 은입사향로로는 대정(大定) 17년(1177)명 표충사소장 청동은입사향완과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지정(至正) 4년(1344)명 중흥사은입사향로 등이 있다.

참고문헌

「고려청동은입사향완(高麗靑銅銀入絲香琓)의 연구」(황수영, 『불교학보』 1, 동국대학교불교문화연구원, 1963)
「한국청동은입사향완(韓國靑銅銀入絲香琓)의 연구」(김창균, 『불교미술』 10, 동국대학교박물관, 1988)
「佛具」(藏田藏, 『日本の美術』 16, 至文堂, 1967)
집필자
김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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