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산실되어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단지, 『향약집성방』의 본문 가운데 풍병(風病)·상한(傷寒)·학병(瘧病)·요통·심통(心痛)·해수(咳嗽)·비뉵(鼻衄)·안병(眼病)·인후·제리(諸痢)·옹저(癰疽)·창양(瘡瘍) 등의 11병문(病門)에 26개 방문(方文)이 인용되고 있다.
또한, 『태조실록』(태조 2년 정월 23일)에 “전라도안렴사 김희선(金希善)이 도평의사사에게 올린 글에서, 외방(外方)에는 의약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각 도에 의학교수(醫學敎授) 한 사람씩을 파견하고 계수관(界首官)마다 하나의 의원을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양반의 자제를 뽑아 모아서 생도로 삼고 그 중에서 글을 알고 조심성 있는 온후한 사람을 뽑아 교도(敎導)로 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향약혜민경험방』을 익히게 하였다.”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는 바 이로 보아 당시 중요한 향약방서(鄕藥方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송나라 화제혜민(和劑惠民)의 주지(主旨)로 엮어진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태평혜민화제국방』이 관용의서(官用醫書)로서 계속 중용된 예에 따라 고려의 혜민국에서도 향약을 의료에 응용할 수 있는 처방집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간행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개국 초기에 관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간행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