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허구년(許龜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형(許衡)이고, 아버지는 허추(許錘)이며, 어머니는 최사흥(崔士興)의 딸이다.
1456년(세조 2) 진사(進士)로서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60년(세조 6) 교감(校勘)으로 파직당하였으나 1462년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 세조의 명을 받아 권람(權擥)의 집에 가서 문병하였고, 이어 예문관대교(禮文館待敎)에 임명되었다.
세조가 화봉당(華俸堂)에 나아가 술자리를 베풀 때 예문관대교로서 경서를 강하고 술을 받았다. 1466년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탐오하고 백성을 침학하고 대납하는 일이 있자 문폐사(問弊使)가 되어 황해도에 내려가 조사하고 관찰사에게 향을 전달한 후에 문폐사가 논핵한 수령을 추국하도록 하였다.
1468년 병조정랑(兵曹正郞)에, 1469년(예종 1)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1472년(성종 3) 형조정랑(刑曹正郞)으로 『세조실록』편수관으로 실록을 수찬한 공으로 향표리(鄕表裏) 1습(襲)이 하사되었다.
1475년 형조정랑으로 선상노(選上奴)를 많이 차지하여 근수(根隨)로 삼아서 포의 값을 강제로 거두었다 하여 탄핵당하고 또 장례원사평(掌隸院司評)으로 있으면서 송자(訟者) 선맹손(宣孟孫)의 노비를 사사로이 취하였다 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1476년 고신(告身: 관직 임명사령장)을 돌려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