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모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 경수(敬修)
  • 관암(冠巖), 운석일민(耘石逸民)
  • 시호문정(文貞)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산(豊山)
  • 사망 연도1851년(철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헌|병조판서|판돈녕부사
  • 출생 연도1774년(영조 50)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기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대동장고 미디어 정보

대동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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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수(敬修), 호는 관암(冠巖) 또는 운석일민(耘石逸民). 이조판서를 지낸 홍양호(洪良浩)의 손자로, 홍낙원(洪樂源)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사간원정언 이존원(李存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정조 때 동몽으로 뽑혀 편전에 입시하여 『효경』을 강(講)하였고, 오언시를 지어 정조로부터 서책과 패향(佩香)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1805년(순조 5) 성균관유생이 되었고, 181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 해에 시독관(侍讀官)으로서 홍문관에 장서가 없음을 개탄하고 계청(啓請)하여 『예기』·『주역』·『퇴계집(退溪集)』 등을 간행하게 하였다. 그 뒤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관리등용의 실책으로 한 때 법성첨절사(法聖僉節使)로 좌천되기도 하였다가, 곧 중용되어 1830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1834년 진하사(進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헌종 때 대사헌을 거쳐 이조·예조·호조·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고,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독서를 즐겨 장서가 많았으며,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관암전서(冠巖全書)』 32책 외에 『관암외사(冠巖外史)』·『관암유사(冠巖遊史)』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대동장고(大東掌攷)』·『기사지(耆社志)』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 『관암전서(冠巖全書)』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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