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홍귀달은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춘추관 편수관(編修官)으로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 때 10여건에 달하는 왕의 난정을 간하다가 좌천되었고, 1504년(연산군 10) 경원(慶源)으로 유배 도중 교살된 문신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 후 복관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숙종 때 문광(文匡)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 비는 1534년(중종 29)에 건립되었는데, 홍문관 대제학 남곤(南袞)이 찬하고, 아들 언국(彦國)이 글을 썼다.
비문은 판독이 어려우나 부림홍씨(缶林洪氏) 세덕록(世德錄)에 그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근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비는 전체 높이가 374㎝로서, 귀부 · 비신 · 이수의 3부분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귀부와 이수의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