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백효(伯孝), 호는 대릉(大陵). 홍중해(洪重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양보(洪良輔)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홍창한(洪昌漢)이며, 어머니는 유두기(兪斗基)의 딸이다.
1757년(영조 3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59년 설서가 되었다. 이듬해 교리를 지내고, 1763년 응교·보덕·의주부윤을 역임하였다. 1765년 대사간·승지를 거쳐, 1767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듬해 충청도감사로 나갔다가 1771년 다시 이조참의에 오르고,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777년(정조 1) 대사성을 거쳐, 공조·호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이조판서가 되었다.
홍국영(洪國榮)이 정권을 쥐고 세도정치를 하자 그의 큰아버지로서 대제학·강화유수 등을 거쳐, 1779년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이듬해 홍국영의 실각과 함께 파직되었다. 1858년(철종 9) 그의 손자 홍우선(洪祐善)의 소청으로 다시 복관되었다. 저서로는 『대릉집』 8권이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