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에 이인로(李仁老)가 지은 부(賦). 서거정(徐居正) 등이 편찬한 『동문선』 권2에 그의 「옥당백부(玉堂栢賦)」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홍도정부」는 시원한 홍도정 우물물을 마시고 더위를 식힌 뒤에 집에 돌아와 나무를 베고 누워서 꿈 속에서 선경(仙境)에 들기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한 소감을 노래한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당(栢堂) 동편 산기슭에 해맑은 샘이 있다. 샘물이 돌틈으로 졸졸 흘러나오니 흰구름 그윽한 골짜기를 씻어 낼 듯하다.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거문고처럼 맑은 소리로 감돌아 도랑으로 들어가니 이웃사람 모두 시원히 움켜 마시는도다. 농서자(隴西子 : 작자 이인로)가 나물 먹고 배가 불러 손으로 배를 문지른다.
가냘픈 오사(烏紗)모자 재껴쓰고서 쟁그랑대는 용죽(龍竹)지팡이 손에 짚고 돌 위에 걸터앉았다. 두 다리를 드러내며 얼음 서리를 희롱하고 구슬을 머금었다가 뿜어내니 어디 불같은 더위를 피할 뿐인가, 먼지 묻은 갓끈도 씻어내는 듯하다.
휘파람을 불며 돌아오니 시냇바람은 설렁하다. 여덟자 대자리(竹席)를 펼쳐놓고 조그만 나무옹이를 베고 누웠다. 꿈속에서 흰 갈매기와 희롱하며 갖은 영화를 누리도다. 너울너울 용을 타고 요지(瑤池)에 가서 서왕모(西王母) 노래를 듣는 듯도 하다.
훨훨 신선의 배를 띄워서 은하수를 건넜다가 촉도(蜀都)의 점쟁이(嚴君平 엄군평)를 놀래는 듯도 하다. 그러니 하필이면 저 진(晋)나라 왕개(王愷)와 석숭(石崇)처럼 부(富)를 자랑하려고 비단 보장(步障)을 치겠는가. 당나라 원재(元載)처럼 호초만도 8백 곡(斛)의 재물을 쌓겠는가. 당나라 단문창(段文昌)처럼 부귀하여 금련화분(金蓮花盆)을 만들고서야 내 발을 씻을 것이 있겠는가.
홍도정의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대자리에 누워 잠이 들어서도 꿈 속에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릴 수가 있다. 그러니 굳이 세상의 부귀를 누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는 언술(言述) 속에 작자의 깨끗한 정신적 지취(旨趣)와 담박한 삶의 자세를 담고 있는 서정적인 수필체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