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천(自天), 호는 효정(孝貞). 홍종한(洪宗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낙정(洪樂靜)이고, 아버지는 부사 홍희영(洪喜榮)이며, 어머니는 이흡(李흡)의 딸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고, 1798년 설서·지평을 거쳐, 1805년(순조 5) 정언이 된 뒤 이듬해 호조판서 이서구(李書九)가 왕비에 대한 음식물의 공급을 지나치게 지출한 것을 탄핵하다가 삭직되어 기장(機張)에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풀려나와 동부승지에 있으면서 채홍원(蔡弘遠)·채제공(蔡濟恭) 등의 원통함을 들어주기를 주청하였다. 그뒤 병조판서가 되어 1835년(헌종 1) 진하사(陳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