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은 대법(大法)을 뜻하고, 구주(九疇)는 아홉 가지 조항을 가리키는 말로, 곧 ‘9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큰 법’이라는 의미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은나라와 주나라 교체 시기에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의 기자(箕子)에게 받아 계승한 것으로, 그 근원은 우왕(禹王)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로부터 낙서(洛書)를 받고 이를 근거로 홍범구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한 뒤 기자에게 선정의 방도를 물었을 때, 기자는 홍범구주로써 그 방법을 제시하였으며, 그 내용은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편에 수록되어 있다. 송대의 학자 채침은 이를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이라 설명하였고, 이후 동아시아 유교 국가의 정치와 학문,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홍범구주는 아홉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다섯 가지 기본 원소인 오행(五行), 둘째는 다섯 가지 행위 규범인 오사(五事), 셋째는 여덟 가지 정사의 요목인 팔정(八政), 넷째는 해와 달, 별과 달력에 관한 오기(五紀), 다섯째는 임금의 정치적 법도로 가장 중시되는 황극(皇極), 여섯째는 정치적 덕목을 뜻하는 삼덕(三德), 일곱째는 점복을 통한 길흉의 판단인 계의(稽疑), 여덟째는 기후와 자연현상을 뜻하는 서징(庶徵), 아홉째는 인생의 다섯 가지 복과 여섯 가지 화를 뜻하는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이다.
오행은 다섯 가지 물질인 수(水) · 화(火) · 목(木) · 금(金) · 토(土)를 지칭한다. 물은 물체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불은 물체를 태우고 위로 올라 가는 성질이 있으며, 나무는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고, 쇠는 조작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하는 성질이 있으며, 흙은 곡식을 길러 거두게 하는 성질이 있다. 윤휴(尹鑴)는 이것을 “천도(天道)의 강령이고 음양의 사업이다. 그 기운이 하늘에 운행되어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사시(四時)이고, 그 이치가 사람에게 부여되어 어긋나지 않는 것이 바로 오상(五常)이다.”라고 풀어서 설명하였다.
오사는 다섯가지의 행동거지의 준칙이다. 외모, 말,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을 지칭한다. 외모는 공손해야 하고, 말은 조리가 있어야 하며,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분명해야 하며,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워야 한다. 공손함은 엄숙을, 조리가 있음은 이치를, 밝음은 맑음을, 분명함은 도모를, 지혜는 성인을 만드는 것이다. 대체로 유학자들은 ‘삼감[敬]’을 기준으로 행동거지에 주의를 기울였다.
팔정은 여덟 가지 정사의 요목이다. 양식 관리, 재정 주관, 제사 관리, 백성 교육, 범죄 단속, 손님 대접, 양병 및 백성의 땅 관리를 의미한다. 실질적으로 정사에 적용되는 덕목들이다. 오기는 다섯 가지 천문과 역수에 대한 것이다. 해[歲] · 달[月] · 날[日] · 별[辰] · 역법(曆法)인데 이것은 달력을 만들어 사계절의 운행을 밝히고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는 것이다. 윤휴는 『홍범경전통의(洪範經傳通義)』에서 오기가 바로 왕정의 급선무이자 백성을 살리는 근본이라고 하였다.
황극은 임금의 법도로서 임금이 정치의 법을 세우는 것이다. 아홉 조항 가운데 대중(大中)의 위치에 있어서 가장 중시된다. 임금은 음양의 변화와 사물의 법칙을 근본으로 삼아 민치(民治)를 베풀고, 일곱의 별자리를 가지런히 하여 가운데서 자리를 이루어 군중을 재도하고 신명(神明)을 도모하며, 하늘의 경계를 존중하고 계승하여 하늘의 명령을 엄숙히 따라야 한다. 대체로 『서경』 「태서(泰誓)」의 이른바 “진실로 총명한 자가 임금이 되니 임금은 백성의 부모가 된다[亶聰明作元后 元后作民父母]”는 것은 임금이 천덕(天德)에 자리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천지가 아울러 세워지고 귀신이 의지하고 백성이 우러러보며, 온갖 변화가 달려 있고, 온갖 복록이 모이는 바이니, 이는 진실로 천하의 한가운데[至中]에 자리하여 사방의 표준이 되는 것임을 말하였다.
『서경』 「함유일덕(咸有一德)」의 이른바 “하늘은 믿기 어렵고 천명은 일정하지 않다[天難諶 命靡常]”는 것은 안위의 추이와 정치의 변화와 다스려짐의 분기와 안위의 기미가 일찍이 여기에서 그 갈래를 다투지 않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 「태갑(太甲)」에서는 “천위가 어렵다네[天位艱哉]”라고 말한 것이다. 도덕적이고 의리적인 측면에서의 군도(君道)를 특히 강조하였다.
삼덕은 세 가지 정치상의 덕목으로, 정직 · 강극(剛克) · 유극(柔克)이다. 평화스럽고 안락할 때에는 정직을 중시하고, 강하고 굴복하지 않을 때에는 강극을 중시하며, 화합할 때에는 유극을 중시해야 한다. 침잠할 때에는 강(剛)함으로써 극복하고, 높고 밝음에는 유(柔)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다. 왕은 복을 내릴 수 있고, 위엄을 보여 줄 수 있고, 성찬을 받을 수 있다. 대체로 형벌의 적용에서 삼덕이 논의되는 사례가 많다.
계의는 점복의 길흉이다. 복(卜)과 서(筮)의 점을 치는 사람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점을 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복서의 점을 치는 사람들은 비 · 갬 · 안개 · 맑음, 흐린 뒤 맑음, 정괘(貞卦) · 회괘(悔卦)에 관한 예보를 한다. 이 일곱 가지의 예보는 복점에 의한 것이 다섯 가지, 서점에 의한 것이 두 가지로서, 이러한 점은 변화하는 현상을 미루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점과 서점을 치는 사람들에게 명해 점을 치게 되는 경우, 왕은 세 사람이 점을 쳤다면 그중 두 사람의 점친 결과를 따라야 한다. 왕에게 큰 의문이 생기면 자신의 마음에 물어보고, 귀족이나 관리에게 물어보며, 백성들에게 물어보고, 복서인(卜筮人)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물어 결정하게 함으로써 다수의 지혜를 모아 판단하는 합리적 정책 결정의 측면이 있다.
서징은 비 · 맑음 · 따뜻함 · 추움 · 바람 및 계절의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날씨의 변화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면 모든 초목은 무성할 것이다. 다섯 가지 날씨의 변화 가운데 어느 한 가지 현상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도 흉하고, 어느 한 가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흉한 것이다. 자연현상의 징조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환경의 변화를 준비하게 하는 것도 제왕의 역할로 판단된 것이다.
오복과 육극은 인생에서의 다섯 가지 복과 여섯 가지 융함이다. 곧 수(壽) · 부(富) · 강녕(康寧) · 유호덕(攸好德) · 고종명(考終命)과 횡사요절 · 질병 · 근심 · 빈곤 · 악 · 약함을 지칭한다. 인간에게 일상에서 가장 절실한 것들이다. 백성들의 행복을 보장해 줄 책임이 있는 제왕이 훌륭한 정치를 함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같이 홍범구주는 고대 중국인이 황하 유역에서 농경을 영위하며 기후에 맞추어 살아가던 경험, 인덕과 인륜을 숭상하던 사유,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체험과 문화를 하나의 사상 체계로 집약한 결과물로 주1
조선 유학자들에게도 홍범구주는 중요한 학문적 자원이 되었다. 이황은 「무진경연계차(戊辰經筵啓箚)」,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 「천명도설후서(天命圖說後筮)」, 「답김이정(答金而精)」 등에서 홍범구주의 내용을 인용해 자신의 학설을 전개하였으며, 이이는 「역수책(易數策)」과 「천도책(天道策)」 등에서 홍범구주의 내용 일부를 인용해 학설을 전개하였다. 이황은 오사의 순서를 강조하여, 외모→말→보는 것→듣는 것→생각하는 것의 차례가 반드시 지켜져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이는 홍범구주를 낙서와 결부시켜 우(禹)의 법도를 설명하고, 불역(不易) · 변역(變易)의 원리를 체계화하였다.
윤휴는 홍범구주의 실제적인 쓰임에 주목하여 『서경』, 『예기』, 『춘추』 등의 용례를 폭넓게 인용하였고, 채침의 해석을 보완하였다. 갈암 이현일은 『홍범연의』를 편찬하여 제왕학적 저술로 발전시켰는데, 여기에서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현실적 지식과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덕적 덕목이 아울러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