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옥여(玉汝). 홍진도(洪振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부(洪溥)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홍성원(洪聖元)이며, 어머니는 박안정(朴安鼎)의 딸이다.
7세에 이미 산법(算法)에 통하고, 독서를 좋아하여 특히 『주자강목(朱子綱目)』에 조예가 깊었다. 고금의 치란(治亂), 인물의 출처(出處)에서 산천(山川)의 험요(險要), 화이(華夷)의 성쇠(盛衰)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재사였다.
1675년(숙종 1) 진사시에 오르고, 1683년 봉사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703년 충청도관찰사, 1704년 승지, 1705년 경기도수사를 지낸 뒤 남계군(南溪君)에 녹봉되고, 한성부우윤, 호조·병조의 참판, 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1707년 우윤 등 내외직을 역임한 뒤 병조참의에 이르고 남계군(南溪君)에 습봉되었다. 이어 호조참판을 거쳐 1712년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러 신병으로 사직하고 강호(江湖)에서 여생을 보냈다.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