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경상북도참여관, 충청북도지사, 전라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기업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5년(고종 22) 1월 20일
사망 연도
1948년 1월 12일
출생지
충청남도 천안
관련 사건
만주 회덕현 오가자 수리계 조직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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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참여관, 충청북도지사, 전라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기업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1885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출생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6년 7월 경성부 필교의숙(筆橋義塾)을 졸업했다. 1907년 7월 탁지부 세무주사에 임용되면서 관직에 입문했다. 1908년 1월 탁지부 원산재무감독국 명천재무서 주사, 11월 경상남도 관찰도 주사가 되었다. 1910년 5월 고성군수(固城郡守)에 임명되었다.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도 고성군수에 유임되었으며, 1912년 8월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4년 3월 함안군수, 1915년 4월 산청군수에 임명되었으며, 11월 10일 다이쇼 ‘천황’의 즉위를 기념하는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도쿄 유학생 오명진 등이 독립선언서를 먼저 군수에게 전달하자, 이를 일본헌병대에 밀고해 전원을 체포시켰고, 1921년 2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사무관, 민정시찰관으로 활동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1922년 1월 훈6등 서보장(瑞寶章)을, 1926년 1월 훈5등 서보장을 받았다. 1922년 총독부 사무관이 되었으며, 1925년 7월부터 1928년 3월까지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위원을 겸했다. 1928년 3월 학무국 종교과장이 되었으며, 1928년 11월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천황’의 즉위를 기념하는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29년 1월 경상북도 참여관으로 승진하고, 3월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조선박람회 평의원, 11월 충청북도지사에 임명되었다. 1930년 10월 조선소방협회 충청북도연합지부장, 12월 수양단조선연합회본부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1931년 9월부터 1932년 9월 전라북도지사를 역임했으며, 11월 훈3등 서보장을 받았다. 1932년 7월 만몽박람회(滿蒙博覽會) 고문을 맡고,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 쇼와 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미업 등에 종사하면서 만주를 무대로 경제활동을 했으며, 전시체제기로 들어서면서 여러 국책회사나 군수회사의 임원을 맡았다. 1938년 7월 동아산업주식회사 창립 발기인, 1939년 3월 흥아광업주식회사 이사, 5월 흥아산업주식회사 이사를 역임했다. 1939년 7월 전시체제하에서 일제가 조선인을 통제하기 위해 각종 관변기구와 민간단체를 총망라하여 조직한 전시통제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평의원을 지냈다. 1940년 2월 조선흥산무역주식회사 이사, 1944년 10월 금강전구주식회사 대표이사, 11월 조선경금공업주식회사 이사, 12월 조선전화공업주식회사 · 조선소형전구주식회사 대표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1945년 2월에는 전쟁협력단체인 대화동맹의 심의원을 맡았으며, 7월에는 전시동원단체인 조선국민의용대 경기도사령부 차장을 역임했다. 1948년 1월 12일 사망했다.

홍승균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9: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540∼560)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구한국관보(舊韓國官報)』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황성신문(皇城新聞)』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9: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3(민족문제연구소, 2009)
『일제협력단체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4)
『독립운동사: 3.1운동사』하(1971)
『삼천리(三千里)』3-11, 5-9, 8-8(1931.11; 1933.9; 1936.8)
『동아일보(東亞日報)』
『매일신보(每日申報)』
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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