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중흠(重欽). 자는 석여(錫餘), 호는 오천(梧泉). 증 좌참찬 홍탁(洪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성현감 홍주천(洪柱天)이고, 아버지는 판서 홍만조(洪萬朝)이며, 어머니는 증 참의 권진(權瑱)의 딸이다.
1711년 (숙종 37)에 진사가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군자감직장에 처음 제수되었다. 1715년 전적·병조좌랑·지평을 역임하고, 1717년 용인현감이 되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이 때 병신처분(丙申處分)으로 광주(廣州)로 물러나 있던 소론의 실세 최규서(崔奎瑞)와 많은 논의를 하였다. 그 뒤 1722년 병조좌랑·지제교를 역임한 뒤 이듬해 삭녕군수(朔寧郡守)로 나아갔다. 1728년(영조 4) 장령, 1743년 병조참지를 거쳐 1747년 승지가 되었다.
1749년 한성부우윤, 1751년 형조참판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그 뒤 1753년 노인직(老人職)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754년 공조판서에 이르러서는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문장에 매우 능하였고, 만년에는 『주역』을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80세에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고, 편서로 『완악편(玩樂編)』 3권·『경사증역(經史證易)』 2권·『좌역참증(左易參證)』 2권 등이 있다. 시호는 양효(良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