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충희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북로군정서 보병중대장을 역임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쓴 독립운동가.
이칭
  • 우봉(禹峰)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임오교변
  • 사망 연도194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8년(고종 15)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변승웅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북로군정서 보병중대장을 역임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쓴 독립운동가.

개설

서울 출생. 호는 우봉(禹峰).

생애 및 활동사항

1903년 대한제국 무관학교 보병과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부위(陸軍副尉)를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의 한 사람인 권동진(權東鎭)을 도와 참여한 뒤 김규식(金奎植)·김찬수(金燦洙) 등과 함께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1920년 만주 길림성 왕청현(吉林省汪淸縣)에서 서일(徐一)·현천묵(玄天默)·김좌진(金佐鎭)·김규식·이범석(李範奭)·조성환(曺成煥)·김찬수 등과 중광단(重光團)에서 발전한 정의단(正義團)을 다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편하는 데 참여하여 총사령관 김좌진 휘하의 보병중대장으로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였다.

1920년 10월 일본군 3개 사단과 싸워 크게 이긴 청산리전투에서 대대장대리 제2중대장으로 김좌진장군과 이범석장군의 지휘 아래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

1934년 김영숙(金永肅)·김서종(金書鍾) 등과 함께 하얼빈 안평가(安平街)에 대종교선도회(大倧敎善道會)를 설치하고 민족정신과 독립의식 고취에 진력하였다. 그러던 중 1942년 임오교변(일본경찰의 대종교 탄압사건)으로 대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검거되자 피신하여 지하생활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대사전』(이강훈, 대한민국광복회, 1985)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자료집』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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