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충전」은 가장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는 「장끼전」의 작품군 중의 하나이다. 「장끼전」이 판소리로 연창된 사실은 판소리 창본으로 추정되는 「자치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예로 장끼와 까투리의 치장 묘사, 까투리의 발화(發話)로 진행되는 ‘육지 생애 자랑’에서 나타나는 표현과 내용, 그리고 죽은 장끼를 안타까워하는 까투리의 절규에서 나타나는 이별의 노래를 들 수 있다. 또한, 「장끼전」의 작품군 중 반 이상이 귀글의 형태로 필사(筆寫)되었고, '자치가'라는 제목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끼전」이 가사(歌辭) 장르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과 대부분의 「장끼전」 작품군은 본문의 분량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규장각 소장본 「화충선생전」과 이화여대 도서관 소장본 「화충전」은 매우 특이한 모습을 보인다. 규장각 소장본은 2권 2책의 국문 필사본(筆寫本)이고, 겉표지에는 ‘화충전(華蟲傳)’이라 적혀 있으며, 본문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화츙션ᄉᆡᆼ젼'으로 되어 있다. 임진년(壬辰年) 윤6월에 도동(桃洞) 윤생원 댁(尹生員宅)에서 필사했다는 후기(後記)가 있다. 윤6월이 들어 있는 임진년은 1892년에 해당한다. 이화여대 도서관 소장본은 하권만 있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충 선생이라 불리는 장끼는 매년 70석의 곡식을 추수했다. 그러나 장끼의 12남 9녀가 추수한 곡식을 모두 먹어 치워, 겨울이 되자 장끼의 가족이 모두 굶주리게 된다. 이에 장끼는 도둑질을 하여 부유해졌다고 소문이 난 서대쥐에게 곡식을 꾸러 간다.
서대쥐 집 앞에 당도한 장끼는 서대쥐를 ‘서동지’라고 부르며 추켜세운다. 이에 기분이 우쭐해진 서대쥐는 곡식 2,000석을 꾸어달라는 장끼의 부탁을 선뜻 들어준다. 그리하여 장끼는 가족들과 함께 겨울을 잘 지낸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끼의 친구 딱부리도 곡식을 꾸러 서대쥐를 찾아간다.
딱부리는 서대쥐가 도둑질한 사연을 들추어 서대쥐를 협박한 뒤 곡식을 얻으려 했으나, 오히려 서대쥐의 하인 수십 명에게 매만 맞고 쫓겨난다. 이후 딱부리는 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한편, 장끼는 어느새 곡식을 다 먹고 다시 굶주리게 되자, 보라매, 사냥개, 포수(砲手) 등의 위험을 무릅쓰고 콩을 주우러 밭에 나간다.
장끼는 눈 덮인 밭에 놓여 있는 콩을 발견하고 주워 먹으려 하나, 까투리가 장끼를 한사코 말린다. 그러나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은 장끼는 결국 덫에 치이게 된다. 까투리는 잦은 상부(喪夫)를 경험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마침내 장끼는 죽고, 덫의 임자인 탁 첨지가 죽은 장끼를 덫에서 빼어 간다.
까투리는 죽은 장끼의 혀를 주워 장사를 지낸 뒤, 장끼의 신위(神位)를 집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슬퍼한다. 이때 딱부리가 까투리에게 찾아와 청혼하다가 까투리의 아들들에게 매를 맞고 쫓겨난다. 이후 따오기 · 백로(白鷺) · 종다리 · 황새 등이 온갖 좋은 말로 까투리에게 구혼하러 오지만, 까투리는 이들의 구혼을 모두 거절한다.
그러다가 지리산 봉내촌에서 온 장끼가 까투리에게 구혼한다. 까투리는 그의 풍채를 보고 구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곧바로 그와 동침(同寢)하며, 그를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한다. 까투리는 장끼를 따라 지리산으로 가기로 하고, 자신의 개가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방편이라며 자식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까투리의 자식들은 어머니가 부정하다며 어머니를 따라가길 거부한다. 그래서 까투리는 자식들을 모두 남겨두고 장끼와 떠난다.
까투리는 장끼와 함께 지리산에 도착하여 성천 기생 홍선, 평양 기생 월선 등 전국의 이름난 기생(妓生)들과 팔도(八道)의 장끼 수천이 모인 가운데 혼례식을 성대하게 올린다. 그리고 갑자년 7월 칠석날에 쌍무지개를 타고 오색구름에 싸여 승천(昇天)한다.
「화충전」은 「장끼전」 기존의 서사 단락을 유지한 채 내용을 부연하거나 서술을 확장했다는 특징이 있다. 1권 앞부분에서는 삽화(揷話)를 추가해 분량을 늘렸고, 2권에서는 기존의 내용을 확장하면서 후반부에 새로운 삽화를 추가해 놓았다. 장끼의 신분이 몰락한 사대부(士大夫)로 설정되어 있고, 서두에서 장끼가 서대쥐에게 곡식을 빌리는 대목이 삽입되어 있는가 하면, 결말 부분에서 까투리가 지리산 장끼와 화려한 혼례식을 올리는 장면이 장황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삽화로 인해, 이 작품은 「장끼전」 이본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장끼전」이 세책본으로 개작(改作)되면서 개가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