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끼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눈 내린 추운 겨울에 장끼와 까투리 부부가 자식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중, 장끼가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고 수상한 콩 한 알을 먹어 덫에 걸려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이후의 결말은 이본에 따라 다른데, 많은 이본에서 까투리는 개가하지 말라는 장끼의 유언을 무시하고 다른 홀아비 장끼와 재혼한다.
1책. 국문 필사본(筆寫本). 국문 활자본(活字本).
이본이 150여 종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많다. 창본, 가사, 소설류의 이본은 100여 종이며 관련 설화(說話)와 민요(民謠)도 50여 종에 달한다. 가사체(歌辭體) 필사본과 문장체(文章體) 필사본, 20세기 초에 출판된 활자본이 전한다. 목판본(木版本)은 확인되지 않는다. 100여 종의 필사본 가운데 문장체 소설로 여겨지는 이본은 소수이고, 대다수의 이본은 율문(律文)으로 된 가사체 계열이다.
장끼가 죽는 전반부는 이본 간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후반부는 까투리의 개가 여부에 따라 ‘개가 유형’과 ‘개가하지 않는 유형’ 2가지로 갈린다. 개가 유형은 ‘또 다른 장끼를 만나 개가하는 유형’과 ‘다른 종의 새와 개가하는 유형’으로 나뉜다. 개가하지 않는 유형은 ‘까투리가 수절(守節)하는 유형’과 ‘까투리가 자살하는 유형’으로 나뉜다.
이본에 따라 제목이 「웅치전(雄雉傳)」 · 「화충전(華蟲傳)」 · 「화충선생전(華蟲先生傳)」 · 「화충가(華蟲歌)」 · 「까투리가」 · 「까투리와 장끼가」 · 「꿩의 전」 · 「자치가(雌雉歌)」 등 다양하다.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장끼와 까투리 등 조류(鳥類)를 의인화(擬人化)한 우화적(寓話的) 작품이다.
장끼가 아내 까투리와 함께 아홉 아들, 열두 딸을 거느리고 눈 내린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을 찾아 들판을 헤매다가 콩 한 알을 발견한다. 굶주린 장끼가 그 콩을 먹으려 하니, 까투리는 지난밤의 불길한 꿈을 말하며 그 콩을 먹지 말라고 장끼를 말린다. 그러나 장끼는 고집을 부리며 그 콩을 끝내 먹고, 덫에 치여 죽는다. 장끼는 죽으면서 아내에게 개가하지 말라고 유언한다. 까투리는 장끼의 깃털 하나를 주워다가 장례를 치른다. 문상 왔던 갈가마귀와 물오리 등이 까투리에게 청혼하지만, 까투리는 모두 거절한다. 그러다가 문상 온 홀아비 장끼의 청혼을 받아들여 재혼한다. 재혼한 이들 부부는 아들딸을 모두 혼인시키고 이름난 산과 큰 하천을 구경하다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
「장끼전」은 처음에 판소리의 한마당으로 불리다가 뒤에 소설화된 작품이다. 현재는 불리지 않으나 이유원(李裕元)의 「관극시(觀劇詩)」와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판소리 「장끼타령」을 듣고 읊은 내용이 나타나며,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는 판소리 12마당 중에 「장끼타령」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전하는 소설의 문체가 율문체로 되어 있는 데서도 그와 같은 사실이 잘 나타난다. 결국 처음에 판소리 「장끼타령」으로 불리다가 그 전승이 끊어지면서, 판소리 대본인 가사만이 남아 소설화된 것이다.
판소리 12마당이 6마당으로, 다시 5마당으로 축소 · 정리되면서 판소리 「장끼타령」은 완전히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장끼타령」은 헌종 · 고종 때의 경기도 태생인 한송학(韓松鶴)에 의하여 그 창법(唱法)이 계승되다가, 후계자가 없어 창법의 전승이 끊겼다는 설도 있다.
한편, 민요에 「까투리타령」이 있으나 「장끼전」과는 내용이 다르다. 구전 동요(口傳童謠) 중 「꿩요」가 많이 전해지는데, 특히 제주도 성산지방의 「꿩요」는 그 내용이 「장끼전」의 내용과 흡사하여 「장끼전」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밖의 「꿩요」들도 「장끼전」의 내용을 압축하거나, 「장끼전」의 내용 일부를 동요화한 것이 많다.
「장끼전」은 장끼의 장례 이후, 까투리의 행보에 대해 이본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거침없이 필사하며 유통되었다. 후대로 갈수록 까투리의 삶과 개가에 대한 진지함은 약화되고 음란성이 강화되어 통속적(通俗的) 흥미를 부여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에 소장된 「자치가」는 수컷들의 까투리 침노 및 폭력적인 남성의 군상을 그리고 있다. 특히 양반적 풍모의 두루미를 부각시켜, 서민 여성을 위협하는 남성의 폭력성을 드러낸 유일한 이본이다. 이러한 이색적인 설정을 통해 조선 후기 여성의 수난상과 생존권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 폭력적인 남성 사회를 폭로하고 여성의 개가를 주장한다.
「장끼전」은 조선 후기 서민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다. 여자의 말이라고 까투리의 말을 무시하다가 죽은 장끼와, 장끼가 죽은 뒤 장례가 끝나자 곧바로 개가한 까투리를 통해, 서민적 입장에서의 남존여비(男尊女卑)와 개가 금지라는 당시의 완고한 유교 도덕을 비판 · 풍자(諷刺)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반 사회의 위선을 폭로하고, 여성 권리의 신장을 도모하여 인간의 본능적 정욕을 중시하는 시대 의식이 표출된 교훈적 · 풍자적 주제를 지닌 작품이다.